■ 다락방 ■/☜ 우㉿표 ☞

[스크랩] 유물

구름에 달 가듯이 2007. 10. 31. 14:23

1.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적

1978년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는 주먹도끼가 발견되어 학계를 놀라게 했다. (전기 구석기 시대.  동아시아 최초로 주먹도끼 출토) 이 유적을 처음 발굴한 이는 그렉 보웬이라고 하는 미 공군하사관이었다. 그는 인디애나 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다 학비를 벌기 위해 군에 입대, 동두천 미군 2사단 헬리콥터장기상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우연히도 그는 석기에 관심이 많았고, 자케타  보르다즈라는 석기 전공 교수로부터 많은 지식을 쌓은 처지였다. 1977년 한국에 온 그는 미군 영내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던 한 젊은 한국 여성과 사귀었는데, 결혼을 약속한 이들은 78년 1월 20일 한탄강 유원지로 같이 놀러갔다. 강변을 산책하던 그는 우연히도 강가의 모래 둔덕이 길을 내느라 잘려나간 곳에서 토기편과 숯이 된 목재가 노출된 것을 발견하게 됐다. 1년여만에 고고학 유적을 접하게 된 그는 매우 흥분하여 그 일대를 좀더 조사해보고자 영문도 모르는 애인을 무조건 따라오게만 하고 주변을 찾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넘도록 별 소득도 없고 추운 날씨에 짜증을 내기 시작한 애인도 있고 해서, 요기나 하자고 생각한 그는 애인과 함께 앉을 만한 곳을 찾았는데, 마침 조금 떨어진 곳에 잔디가 깔린 묘역이 있어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배낭을 내려놓고 물 끓일 차비를 하던 그에게 갑자기 주먹도끼 한 점이 눈에 들어 왔다. 몸이 얼어버릴 것만 같은 충격에 그는 들고 있던 것을 내팽개치고 그것을 집어들고는 어리둥절한 애인에게 "봐! 봐! 내가 뭘 찾았는지 보라구!" 하는 소리를 정신없이 외치며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주위를 계속 찾던 그는 주먹도끼 3점, 긁개 1점을 발견했다. 전곡리 유적이 드디어 긴잠에서 깨어난 순간이었다.

사냥과 수렵 등의 자연 경제에 의존했던 구석기인들의 생활 모습이다. (주영복 그림)

 

 

2. 부여 송국리 유적

송국리 유적에서 발굴된 집터에서는 토기와 석기 및 불탄 쌀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바라진 아가리에 계란 모양의 몸통에 작은 납작 바닥을 가진 송국리형 민무늬토기가 대표적이며, 석기로는 다량의 숯돌과 함께 간돌검, 화살촉, 반달돌칼 등이 출토되었으며 청동 거울과 비파형 동검 등 청동 제품도 다량 나왔다.

 

3. 거 푸 집

거푸집은 한국의 청동기문화가 독자적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왼쪽 것은 세형동검을 만들던 틀이고, 오른쪽 것은 창을 만들던 틀이다.

                                                                  

 

4. 고 인 돌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무덤으로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 분포하며, 주검의 위치와 무덤의 형태에 따라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구분된다. 부근리 고인돌은 현재 남한에서 일명 탁자식으로 부르는 북방식 고인돌로서는 가장 거대한다.

 

5. 고령 금관과 김해의 갑옷

고령 지산동의 가야 무덤은 후기 가야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무덤 중앙에는 큰 돌덧널이 있고 둘레에 여러 기의 작은 돌널을 딸려 묻은 모습이다. 지산동 32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신라관과는 달리 앞쪽에 불상 광배 모양의  장식을 세운 형태로 일본 후꾸이현 니혼마쓰야마 고분에서도 거의 같은 형태의 관이 출토되어 서로간의 교류를 짐작할 수 있다. 김해 출토 판갑옷은 여러 장의 긴 철판을 쇠못으로 연결하여 만든 것으로 가야의 우수한 철기 제작 기술을 알 수 있는 유물이다.

 

6. 경주 사라리 무덤 유적

이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집터와 초기 철기시대 무덤이 조사되었으며, 이 중 가장 대표적인 사라리 130호 널무덤은 같은 시기의 다른 무덤에 비해 규모가 매우 크다. 또한 널 아래에 70여개의 쇠도끼를 나란히 깔아 한국식 동검과 쇠단지, 호랑이무늬띠고리 등 다수의 금속제품과 조합식 쇠뿔잡이목항아리, 주머니호 등의 토기를 부장한 점으로 보아 당시 이 지역 수장의 무덤임을 알 수 있다.

 

7. 신라 금관

이 화려하기 그지없는 금관은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것이다. 황남대총은 경주 시내 고분 중 규모가 가장 큰 돌무지덧널무덤으로 두 개의 봉분이 남북으로 이어져 있는 쌍둥이무덤으로 남분이 북분보다 먼저 만들어졌다. 북분은 꾸미개가 없고 무기류가 적으며, 부인대라는 글씨를 새긴 은제 허리띠끝꾸미개가 출토되어 주인공이 남분 피장자의 부인으로 순금제 관을 쓴 점으로 보아 혈연상 남편보다 우월한 신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8. 얼굴 모양 수막새

이 수막새에 나타나 있는 사람의 미소를 사람들은 흔히 '신라의 미소'라고 한다. 통일신라시대. 경주 영묘사지 출토. 지름 14센티미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9. 경주 안압지

9. 경주 안압지

신라 최대의 인공못으로 원래의 이름은 월지(月池)이다. 못의 둘레는 직선 또는 굴곡된 모양으로 돌을 쌓아올린 호안 석축과 물의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입수구와 출수구 시설이 발견되었다. 유물로는 실생활에 사용되었던 토기와 장신구, 옷걸이, 가위, 불상 등의 금속 공예품 외에 다수의 건축 부재와 와전류가 출토되었다. 이 중 용마루에 올렸던 대형 망새는 화재 예방을 위한 것이며, 지붕 마루 끝을 장식하였던 도깨비 기와는 벽사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통일 신라의 우수한 궁중 문화 수준을 엿볼 수 있다.

 

10. 상원사 동종의 비천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다. 종 표면에 악기를 연주하며 하강하는 비천을 표현하였다.

 

 

11. 첨 성 대

첨성대는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 관측대다. 단순한 상징물 정도로 보는 사람들이 있으나 역사 기록을 보나 크기로 보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여기서 천문 관측을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어떻게 했는지를 모를 뿐.

 

 

12. 공주 무령왕릉

1971년 7월 6일 1442년간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침묵하던 무령왕과 왕비가 부활한 순간이었다. 공주 금성동 (옛 송산리)에서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은 터널형의 벽돌무덤양식이다. 유물로는 왕과 왕비의 관(冠) 장식과 순금 귀걸이, 목걸이 등 각종 장신구 및 청동 거울·다리미 등과 함께 무덤을 지키는 돌짐승과 매지권(買地券) 등이 있었다. 매지권에는 묻힌 이가 무녕왕과 왕비라는 글이 있어, 이를 통해 묻힌 사람의 이름과 사망 시기를 알 수 있는 삼국 시대의 유일한 왕릉이며, 출토 유물과 벽돌 무덤이라는 점을 통해 당시의 활발했던 중국과의 교류를 짐작할 수 있다.

 

 

13. 무령왕릉 출토 금제 관 장식

기록에 의하면 백제의 왕들은 금꽃으로 꾸민 오라관(烏羅冠)을 썼다고 하는데, 무령왕릉의 관식은 실제로 금판을 오려 만들었다. 왕의 관식은 인동 무늬를 기본으로 하여 꽃가지에 날개 장식을 달았다.

 

 

14. 무령왕릉 출토 귀걸이

왕의 귀걸이는 가운데 고리에 작은 고리 2개를 연결고리로 하여 두 줄의 귀걸이를 매달았다.

 

 

15. 돌 짐 승(석수)

기괴한 돌 짐승을 무덤 안이나 앞에 놓아서 악귀를 쫓아 사자(死者)를 수호하는 것은 중국의 장묘 풍습이다. 기괴한 상상의 동물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무령왕릉의 석수는 전체적인 모습이 중국 석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쇠뿔을 따로 만들어 머리에 꽂는다거나 전체 형상을 도안화시켜 표현한 것들은 중국의 석수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백제의 독창성이 더해진 것으로 주체적인 문화 수용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16. 귀 면 문 전

1937년 여러 가지 전돌들이 출토되고 주변에서 여러 개의 건물지와 더불어 금동보살 입상이 발견되어 사비시대의 절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이다. 여기에서 발견된 문양전은 산수문전, 귀면문전, 연화문전, 반룡문전, 봉황문전, 연화운문전 등 8종류이며 바닥에 나란히 깔려 있는 상태로 출토되었다. 이 우표에 실린 전돌은 귀면문전이다.

 

 

17. 백제 금동 대향로

이 향로는 1992년 부여의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되었다. 이 향로는 높이가 64센티미터나 되는 유례없는 대작인데다 용과 봉황의 비중이 상당히 두드러져 있다.  그 형태를 보면 위가 크고 아래가 작은 산형을 이루며, 용이 가느다란 버팀대처럼 뻗어 올라가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18. 금동 투각 장식판

6세기 경  고구려의 금동 투각 장식판이다. 인왕상을 표현했다. 북한에서 1977년 발행된 우표다.

 

 

19. 12지신상(1)

12지신은 땅을 지키는 열두 신장을 말하는 것으로 십이신장 또는 십이신왕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열두 방위에 맞추어 여러 동물의 얼굴 모습을 가지고 몸은 사람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도교의 방위 신앙에서 강한 영향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이 우표는 쥐를 나타낸 것이다.

 

 

20. 12지신상(2)

이 동물은 소를 나타낸 것이다.

 

21. 12지신상(3)

 

이 동물은 호랑이를 나타낸 것이다.

 

22. 12지신상(4)

이 동물은 토끼를 나타낸 것이다.

 

23. 12지신상(5)

이 동물은 용을 나타낸 것이다.

 

24. 12지신상(6)

                                               이 동물은 뱀을 나타낸 것이다.

 

 

25. 12지신상(7)

                                              이 동물은 양을 나타낸 것이다.

 

 

26. 12지신상(8)

                                              이 동물은 말을 나타낸 것이다.

 

 

27. 12지신상(9)

                                           이 동물은 원숭이를 나타낸 것이다.

 

 

28. 12지신상(10)

                                              이 동물은 닭을 나타낸 것이다.

 

근디 요상하네..암만 찾아두 개띠는 없네..ㅠㅠ

 

 

29. 12지신상(11)

이 동물은 돼지를 나타낸 것이다.

 

 

30. 용 두 보 당

당간이란 보통 보당(寶幢)이라 하는 깃발을 달거나 또는 대형 불화를 다는데 사용된 장치이다. 그 아랫부분에는 돌이나 나무, 철 등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당간 지주를 두었으며, 그 위에 당간을 설치하였다. 이 당간은 용의 머리 모양을 본떴는데, 정교한 주조술을 토대로 자신감 넘치는 솜씨로 당당한 모습의 용을 표현하였다. 또렷하게 묘사된 용의 비늘과 분명하게 표현된 작은 눈동자로 인하여 정기 넘치는 용의 자태에서 고려인들의 정교한 표현력을 읽을 수 있다.

 

 

31. 하 회 탈

하회 별신굿은 경북 안동군 풍천면 하회리에서 전승되어 오는 민속극으로 1928년 이후 현지에서 중단되었다가 1958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하회 별신굿은 10년에 한번씩 또는 마을에 제약이 있을 때 또는 신탁이 있을 때 임시로도 거행되며, 해마다 정월보름, 4월초파일에 올리는 평상제를 동제 또는 제사라고 한다.  
하회 별신굿에 사용되는 이 탈은 선비탈이다. 황새 걸음을 걸으면서 흥겹게 춤을 추나 웃음을 띠지 않는다. 거만을 떨다가 망신만 당함

 

 

32.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집이며 현재 우리나라의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중의 하나이다.

 

 

33. 숭 례 문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숭례문은 서울의 남문으로 현재 국보 1호로 지정되어 있다. 국보 1호 지정은 일제시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이에 대해 남쪽의 일본인을 맞이한다는 의미로 지정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최근 국보 1호를 다시 정하자는 여론이 일어나기도 했다.

 

 

34. 법주사 팔상전

충북 보은면 내속리면 사내리. 1626년. 국보 제 55호로 임란때 불탄 것을 1626년 중건한 우리 나라에서 몇 안되는 목조탑 양식의 건물이다.

 

 

35. 발달한 인쇄문화

우리나라는 앞선 인쇄술로 세계문화에 기여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고, 현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인쇄물로 평가받는 것이 직지심경이다.

 

 

36. 해시계와 물시계

해시계(앙부일구)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시계였다. 앙부일구는 솥이 하늘을 보고 있는 모양의 해시계란 뜻으로, 1434년(세종16년) 10월 종묘 앞과 혜정교에 처음 세웠다. 그 후 앙부일구는 궁궐이나 관공서, 그리고 때로는 양반의 집까지 널리 사용되었는데, 정원에 설치해 놓고 시간을 측정하는 것과 휴대용으로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시간을 알고 싶을 때 측정하는 것 등 두 가지로 나뉜다.
자격루는 자동 시보 장치가 있는 물시계로 현재 통용되는 만원권에 새겨져 있다. 이 시계는 세종 16년(1434) 왕명을 받은 장영실, 이천 등이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시간에 따라 자동으로 종,북, 징을 쳐서 시간을 알리도록 되어있었다.

 

 

37. 풍기대와 측우기

풍기대는 바람을 관측하는데 쓰였다. 관상감에서는 풍향을 매우 주의 깊게 관측했는데 그 측정 도구는 풍기죽이었다. 긴 대나무 끝에 바람에 날릴 수 있는 실뭉치를 달아 매단 아주 간단한 도구였다. 풍기죽이 최초로 만들어진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세종 때부터는 관상감에서 풍기죽을 이용해 공식적으로 바람을 관측했다.
측우기는 1441년 처음 만들었는데, 그 이듬 해에  깊이 약 31센티미터, 지름 약 14센티미터의 원통을 고쳐 만들었다. 철로 만든 측우기를 돌로 만든 대 위에 올려 놓고 비가 그치면 철로 된 주척에 푼 (약 2미리미터) 단위까지 표시하여 그 깊이를 재어 보고하게 하였다.

 

 

38. 수 원 성

수원성은 한국 성곽이 꽃으로 역대 성곽의 장점을 모으면 바로 수원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조선 후기 동서양의 축성 기술의 장점을 결합하여 만들었다. 이 공사의 과정에 정약용이 만든 거중기가 이용되기도 하였다. 정조는 수원성곽의 공사가 끝난 후 공사 과정과 비용, 투입된 인력과 물자들을 낱낱이 기록한 일종의 공사종합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를 만들었다.

 

 

39. 석조 호랑이

이 호랑이는 옛날 영릉에서 무덤을 지키던 것인데 현재는 단국대 박물관 앞에 있다.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 모습으로 매우 해학적이고 친근감을 준다.

 

 

40. 나주 신촌리 출토 금동관

'옹관묘'라는 독특한 묘제로 대표되는 영산강 유역 세력은 한국사에서 하나의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그들이 백제에 의해 남쪽으로 밀려난 마한의 잔여 세력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우리 고대사에 자주 등장하는 '왜'(倭)라는 설도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 중에서 일본과 연관된 유물들도 다수 발견된다는 점이다. 이 지역 세력이 왜로 건너갔는지 아니면 왜인들이 이 지역에 진출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관심있는 분은 이덕일 저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1권을 읽어보면 도움이 된다.

 

자료;박건호의 역사 사랑.

출처 : 향기나무
글쓴이 : 향기나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