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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조건축이 낳은 우리 전통지붕

구름에 달 가듯이 2010. 6. 13. 12:38

 

 



목조건축이 낳은 우리 전통지붕
서양건축의 지붕이 시대별로 많은 변화를 해왔던 것과는 달리 한국의 지붕은 거의 일정한 정형을 이루어왔다. 이것은 서양이 합리적인 사고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지붕 형태가 변해온 반면 동양,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지붕에 대한 상징적 의미가 크게 작용하여 정형의 지붕 형태가 유지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한국건축에서 지붕의 중요성은 우선 ‘집’과 ‘지붕’이라는 언어적 유사성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지붕의 일정한 정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굴뚝을 지붕 위로 올리지 않고 따로 독립된 수직적 의장요소로서 부각시켰던 점, 그리고 문, 담, 굴뚝 등에도 기와를 얹어 지붕 형태와의 일체감을 주기 위하여 노력한 점을 통해서도 파악할 수 있다.

지붕 위에는 용두, 취두, 치미, 잡상, 절병통 등을 설치하여 시각적 흥미를 유발시킴과 동시에 강한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지붕의 합각부에 무늬를 넣어 시각적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정한 정형의 지붕 형태를 어떻게 해서 갖게 되었는가? 그것은 우리나라 건축이 목조건축으로 구축되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목조는 습기에 약하기 때문에 기둥을 땅 밑에 박았을 때 나무 기둥이 썩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나무 기둥은 돌로 된 초석 위에 얹혀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나무 기둥 밑둥이 썩는 것은 보호해줄 수 있지만, 기둥을 땅 밑에 박았을 때처럼 옆에서 미는 힘에 대한 저항력이 없게 된다. 즉 건물이 세워진 후 옆으로 툭 밀면 쓰러질 위험이 많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위에서 강하게 눌러주면 어느 정도 안전한 구조가 된다.

이러한 구조적 원리에 의해 한국 건축의 지붕은 전체 입면의 약 1/2 정도의 크기를 차지하는 육중한 면적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육중한 지붕이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한국의 미라고 일컬어지는 지붕선 때문이다.

즉 구조적으로 육중한 지붕을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지붕선을 통해 오히려 하늘로 오르려는 경쾌한 느낌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한국의 지붕선은 지붕선 자체보다도 건물 전체의 시스템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맞배지붕                    팔작지붕                  우진각지붕                   사모지붕


육모지붕                   팔모지붕                    丁자지붕                   十자지붕

우리 건축물은 안에서 밖을 내다보며 삼라만상을 포용

우리나라의 지붕은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기와지붕·초가지붕·너와지붕·굴피지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기와지붕은 흙으로 구운 기와를 사용한 것이고, 초가지붕은 짚이나 갈대 억새 등을 이용한 것이다. 너와지붕은 통나무를 쪼개어 만든 널로 지붕을 덮은 것이고 굴피지붕은 나무껍질을 넓게 벗겨서 일정한 길이로 잘라 덮은 지붕을 말한다.

이러한 재료들의 공통적인 특성은 비나 눈 등의 자연 현상을 배척하는 개념이 아니라, 이들을 어느 정도는 흡수해가면서 자연스럽게 밑으로 흘러내리게 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지붕이 머금은 습기는 방안의 습기를 조절하는 장치로 사용되었음은 물론이다.

한국 지붕의 넓은 지붕면은 구조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이러한 환경을 조절하는 측면에서도 고려되었다는 것이다. 지붕을 형태상으로 나누어보면 맞배지붕·우진각 지붕·팔작지붕·다각형지붕·丁자지붕·+자지붕 등이 있고, 이를 기본으로 하여 평면형상에 따라 기본적 형태들이 서로 결합된 특이한 형태의 지붕이 구성된다. 맞배지붕은 지붕면이 앞뒤 양쪽으로만 경사진 형태로 측면은 삼각형의 형상을 지니게 되는데 측면 가구의 힘찬 모습이 그대로 노출된다.

맞배지붕은 다른 지붕에 비하여 용마루선과 처마선이 길게 평행을 이루어 수평선이 강조된다. 아주 넓은 수평선은 종묘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강압적이지 않은 엄숙함을 느끼게 한다. 수직선에서는 강압적인 위압감을 느끼게 하지만 수평선은 그보다 더 강한 힘을 갖는다. 사람에게서도 그러한 느낌을 갖는다. 날카롭고 직선적인 사람보다는 평온하고 묵직한 사람에서 보다 더 큰 힘을 느끼는 것과 같다.

맞배지붕에서처럼 우리 건축은 넓은 지붕면이 정면이 된다. 서양건축이 삼각형의 박공면이 정면을 이루고 있는 것과는 좋은 대조가 된다. 그것은 동서양 건축의 차이를 나타내주는 것으로 우리 건축은 안에서 밖을 내다보며 바람소리·빗소리·사람들의 희로애락을 포용하는 개념이고, 서양건축은 건축물 안에서 자아를 확립하고 외부세계와의 단절을 시도하는 건축이었다는 것이다.

우진각지붕은 전후좌우의 4면이 모두 경사가 진 형태로 도성의 성문이나 궁궐의 대문 등에 사용된다. 초가지붕 형태도 우진각으로 볼 수 있다. 팔작지붕은 합각지붕이라고도 하는데 우진각지붕의 상부를 자른 후, 그 위에 맞배지붕을 올려놓은 형상이다.

지붕을 평면상에서 볼 때 가운데 부분이 움푹 들어가게 하는 후림과 입면상에서 볼 때 양 귀퉁이를 가볍게 올리는 조로라는 수법을 이용하여 용마루 선과 조화를 이루게 하여 한국 지붕선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나타내주고 있다.

다각형지붕은 사모지붕·육모지붕·팔모지붕 등이 있는데, 주로 정자건축에 널리 쓰인다. 이외에 丁자형지붕은 왕릉 등에 많이 사용되고, 십자형지붕은 송광사의 범종루에서 볼 수 있다. 창덕궁 후원의 관람정은 부채살 모양의 평면에 부채살 모양의 지붕을 구성하고 있는 특이한 예다.

이러한 지붕은 민가에서 각 평면이 다양한 형태로 결합되면서 다양한 유형으로 발전된다. 평면과 평면이 만나는 부분에는 지붕 면끼리 각 공간에 대한 높이 차이를 이용하여 빗물을 밑에 있는 지붕에 자연스럽게 넘겨주며 건물에 대한 위계성을 자연스럽게 표현해주고 있다.

서로 겹치면서 지붕 사이에 공간적 여백을

한국지붕의 미에 대해서는 그동안 지붕선에 논의가 집중되어왔다. 그러한 논의의 출발점은 일본인 학자 유종열(柳宗悅; 일본인으로서 한국이름으로 개명: 필자 주)에 기인한 것이다. 유종열은 한국의 선에 대하여 “물이 흐르듯 길게 뻗어나는 그 곡선은 잇달아 무한히 호소하는 심정의 표현이다. 말하기 어려운 온갖 원망이나 슬픔, 그리고 그 동경이 얼마만큼이나 흐르고 있을 것인가?

그 민족은 그럴듯하게도 선의 은밀한 의미에 그러한 심정의 표현을 의탁한 것이다”라고 하여 우리의 지붕선의 미를 비애의 미, 상념의 미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지붕선에서 비애의 미를 찾기 어렵다. 오히려 우리의 지붕선에서는 하늘로 오르려는 상승감을 극적으로 느낄 수 있다.

한국지붕의 참다운 미는 단순한 지붕선의 곡률반경보다도 이러한 지붕들이 각각 높이와 크기에 있어서 변화를 가지면서 서로서로 중첩되어 겹치면서 그 사이사이에 공간적 여백을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건축은 각 건물이 채로서 분리가 되면서 각각의 용도와 기능이 나누어지는데, 이에 따라 각 건물의 격이 나누어지면서 건물의 크기와 높이에 있어서 차이를 지니게 된다. 이러한 복잡한 공간 구성은 지붕을 통해 하나의 통합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즉 다양한 개성을 갖고 있는 건축물들의 성격을 지붕을 통해 하나로 통합해왔다는 것이다.

한국건축에서 보여지는 음과 양, 꽉참과 비어 있음, 남과 여, 여름과 겨울, 수축과 팽창, 어둠과 밝음, 갈등과 대립, 이 모든 대립된 성격을 품어안은 채 하늘로 날개짓 하는 것이 한국의 지붕이다.

: 김종헌 <배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 느티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