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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상기획(11)] 대설주의보/ 최 승 호

구름에 달 가듯이 2011. 5. 3. 19:00

 


 

 

대설주의보/ 최 승 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19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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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감상 : 정끝별·시인 ]
    • 눈은 어떻게 내리는가. 어디서 오는가. 어디로 사라지는가.
      머언 곳에서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내리는 김광균의 눈이 있는가 하면,
      쌀랑쌀랑 푹푹 날리는 백석의 눈이 있다.
      기침을 하자며 촉구하는 김수영의 살아있는 눈도 있고,
      희다고만 할 수 없는 김춘수의 검은 눈도 있다. 괜, 찮, 타, 괜, 찮, 타, 내리는 서정주의 눈도 있고
      , 갑작스런 눈물처럼 내리는 기형도의 진눈깨비도 있다.
    • 그리고 여기 '백색계엄령'처럼 내리는 최승호(54) 시인의 눈이 있다.
      1980년대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념의 시대였고 폭압의 시대였다.
      그는 '상황 판단'이라는 시에서
      '굵직한/
      의무의/
      간섭의/
      통제의/
      밧줄에 끌려다니는 무거운 발걸음./
      기차가 언제 들어닥칠지 모르는/
      터널 속처럼 불안한 시대' 라고 일컬었다.
      그의 시는 선명하고 섬뜩하게 '그려진다'. '관(觀)'과 '찰(察)'을
      시 정신의 두 기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현실을 '보면서 드러내고', 자본주의와 도시문명을 '살피면서 사유한다'.
    •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골짜기에 눈은, 굵게 힘차게 그치지 않을 듯 다투어 몰려온다.
      눈보라의 군단이다. 도시와 거리에는 투석이 날리고 총성이 울렸으리라.
      눈은 비명과 함성을 빨아들이고 침묵을 선포했으리라. 백색의 계엄령이다.
      쉴 새 없이 내림으로써 은폐하는 백색의 폭력,
      어떠한 색도 허용하지 않는 백색의 공포!
      그 '백색의 감옥'에는 숯덩이처럼 까맣게 탄 '꺼칠한 굴뚝새'가 있고,
      굴뚝새를 덮쳐버릴 듯 '눈보라 군단'이 몰려오고,
      그 군단 뒤로는 '부리부리한 솔개'가 도사리고 있다.
      분쟁과 투쟁, 공권력 투입, 계엄령으로 점철됐던 시대 상황에 대한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골짜기에 굵은 눈발이 휘몰아칠 때
      그 눈발을 향해 날아가는 굴뚝새가 있었던가.
      덤벼드는 눈발에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췄던가.
      꺼칠한 굴뚝새의 영혼아, 살아있다면 작지만 아름다운 네 노랫소리를 들려다오!
      다시 날 수 있다면 짧지만 따뜻한 네 날개를 펼쳐 보여다오!

 

 
출처 : 구름에 달 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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