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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상기획(56)]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구름에 달 가듯이 2011. 5. 3. 19:18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낭송:이혜선)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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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감상: 문태준·시인]
  • 시름 많은 사람들과
    "어두운 땅 한 평 가꾸다 갈래요/
    우리나라 하늘 한 평 비추다 갈래요"라고 노래했던 시인 고정희(1948~1991).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마치 그녀가 상한 영혼의 곁에 앉아
    작은 목소리로 "흙에 심은 뿌리 죽는 법 보았나요"라고 묻는 것 같다.

  • 평론가 김주연이 분석한 대로 이 시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신다"는 성경의 말씀과 겹쳐 읽힌다.
    '하늘 아래'라는 표현도 예수의 언약과 임재(臨在)를 둥글게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 넋으로 기댈 곳 없이 큰 고통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힘껏힘껏 껴안고 살겠다는
  • 강한 의지를 이 시는 보여준다.

  •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했고 다분히 기독교적인 신앙에 기초한 시편들을 써낸 고정희 시인은
    기독교의 현실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칼을 들이댔다.
    "하느님을 모르는 절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이쁜 우매함인가"라고 질문했고,
    동시에 "하느님을 등에 업은 행복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맹랑한 도착 신앙인가"라며 고민했다.
    그녀가 비판하고 날카롭게 투시한 대상은 눈앞의 현실 그 자체였으며,
    돌봄이 있는 따뜻한 공동체는 그녀가 꿈꾸는 세계였다.

  • 고정희 시인은 한 생애를 정열적으로 살다 간 여성운동가이기도 했다.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지냈고,
    여성주의 문화집단인 '또 하나의 문화' 창립 동인으로도 활동했다.
    "제도적 억압의 굴레를 극복하려는 힘,
    그것이 자유 의지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나의 시는 항상 자유 의지에 속해 있는
  • 하나의 에너지"라고 자평했는데,
    조금의 호락호락함도 없이 평소 신념을 시 창작과 생활에서 실천했다.
    한 시대의 깊고 어두운 계곡을 묵상했으므로 그녀의 시는 미지근하거나 융융한 그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시는 80년대의 격문이면서 '우릉우릉 폭발하는 화산(火山)'이었다.

  • 1991년 6월 지리산 뱀사골을 오르다 폭우로 불어난 물에 휩쓸려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충격적인 죽음을 생각하면 생전에 쓴 시
  • '지리산의 봄 1-뱀사골에서 쓴 편지'가 자꾸 떠오른다.
    "아득한 능선에 서 계시는 그대여/
    우르르우르르 우뢰 소리로 골짜기를 넘어가는 그대여/(…)/
    아름다운 그대 되어 산을 넘어갑니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승천합니다"라고 쓴 시. 그녀의 시를 읽고 있는
  • 오늘 새벽은 내 가슴이 아프다.

 

 

 
출처 : 구름에 달 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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