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등본 -신용목
무너진 그늘이 건너가는 염부 너머 바람이 부리는 노복들이 있다
언젠가는 소금이 설산(雪山)처럼 일어서던 들
누추를 입고 저무는 갈대가 있다
어느 가을 빈 둑을 걷다 나는 그들이 통증처럼 뱉어내는 새떼를 보았다 먼 허공에 부러진 촉 끝처럼 박혀 있었다
휘어진 몸에다 화살을 걸고 싶은 날은 갔다 모든 모의(謀議)가 한 잎 석양빛을 거느렸으니
바람에도 지층이 있다면 그들의 화석에는 저녁만이 남을 것이다
내 각오는 세월의 추를 끄는 흔들림이 아니었다 초승의 낮달이 그리는 흉터처럼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허리 꺾인 가장(家長)
아버지의 뼈 속에는 바람이 있다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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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 감상: 문태준·시인]
- 젊은 시인 신용목(34)은 "바람 교도(敎徒)"(시인 박형준의 말)다.
그의 시 곳곳에는 바람이 불어오고 멈추고 쌓이고 흐른다.
독특한 것은 그가 포착하는 바람의 속성인데, 그의 생각에 바람은 쌓이는 것이면서 강하게 - '무는 힘'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바람이 비의 칼집을 잡고 서는 날"(〈바람 농군〉)에서처럼 바람을 정지시켜 묶어두거나,
"느닷없이 솟구쳐 오르는 검은 봉지를/
꽉 물고 놓지 않는/
바람의 위턱과 아래턱"(〈새들의 페루〉),
혹은 "나는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에 물려 있다"(〈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라고 - 써서 바람의 '무는 힘'을 강조한다.
아무튼 '바람 교도'답게 그의 시집을 펼치면 바람이 와르르 쏟아진다.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는 문장이 모 기업의 에어컨 광고 문구로 사용되어
더 많은 이에게 알려진 이 시에도 바람이 등장한다.
시인은 폐(廢)염전을 걸어가고 있다.
저녁 무렵이었을 테고, 갈대가 있는 곳에서 멈춰 섰을 것이다.
바람 속에서 갈대는 갈대숲에 깃든 새들을 "통증처럼 뱉어내"고 있었을 것이다.
늦가을이었으므로 갈꽃이 진 갈대는 '촉'처럼 '화살'처럼 서 있고
시인은 그 갈대들을 보면서 세월의 한 참극과 풍파를 기억해 냈을 것이다.
아마도 가족사에 해당될 사건들을. (그래서 제목이 〈갈대 등본〉 아닌가.
우리가 동사무소에 가서 한 장씩 떼는 '주민등록등본'처럼.)
가족사 가운데서도 아버지와 관련된 과거의 일을 시인은 떠올렸을 것이다.
갈대처럼 누추를 입고, 뼛속까지 바람의 지층이 나 있고,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이제는 꺾인 아버지를 보았을 것이다.
지금 시인이 서 있는 공간, 즉 폐염전과 빈 둑과 꺾인 갈대와 바람이 부는 이 공간이
마치 아버지라는 존재의 영역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는 표현에는 개인적인 참회를 통해 - 아버지와의 관계를 복원하려는 결심이 담겨 있는 것이다.
노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나비 눈》의 대본을 쓰기도 한 신용목 시인은- 우리 주변 사람들의 '허기'를 돌본다.
이주노동자, 구두수선공, 시장통 사람들이 등장하는 그의 시는 따뜻하고 서글서글하다.
'등이 굽은 가축'인 우리를 돌보는 아파트 경비원 정씨는
"어제는/
물통을 청소하고 오늘은/
배설구를 씻는다 가축은/
정갈해야 하므로 내일은/
쥐똥나무를 전지하고 모레는/
짜기철망을 손질한다 가축은/
안전해야 하므로/
정해진 시간마다/
상한 데는 없는지 손전등을 들고/
고삐를 훑으러 간다"(〈경비원 정씨〉)
신용목 시인은 한국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젊은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음과 같은 시는 그런 평가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한다.
"밤의 입천장에 박힌 잔이빨들, 뾰족하다//
저 아귀에 물리면 모든 죄(罪)가 아름답겠다//
독사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는, 별의 갈퀴//
하얀 독으로 스미는 죄(罪)가 나를 씻어주겠다"(〈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