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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Condor Pasa

구름에 달 가듯이 2011. 5. 25. 16:09

 El condor p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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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l condor p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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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아라 날아라 콘도르여
        고원의 하늘을
        고원의 그림자
        아메리카 인디오 정신의 상징

        ♬ 인디오 민족의 피여
        잉카제국은 배신당하고
        께나는 슬피우네
        대지의 여신은 인디오에게 가르쳤지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 (EL CONDOR PASA 가사)



                          * * * 태양신에게 바치는 노래 * * * 

        
                  폴크로레(FOLKLORE)는 스페인어로 민간전승, 민속학, 민족 음악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포크(Folk)에 해당하는 말로, 남미에서는 순수한 민족 음악뿐만 아니라 
                  그것에 기인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폴크로레란 안데스 산맥 지방의 민족 음악을 의미한다. 
                 안데스 산맥은 남미 대륙의 서부를 종단하고 있으며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등의 나라가 국경을 나누어 갖고있다.

        대게 폴크로레라고하면 이들 나라의 노래를 가리킨다.

        폴크로레는 단순히 전통을 현대화시킨게 아니라 문화의 용광로(쿠바의 밀롱가와
        아바네라로부터 카톨릭 미사, 이베리아의 무곡까지)에서 자연스럽게 발화된 것과
        과거와 현재의 혼재로 인해 보편적 음악언어로 소통된다고 볼 수 있다.





        잉카 음악(「잉카」는 케추아어로 "태양의 아들"이란 뜻이다.)

        아득히 먼 옛날 유럽사람들이 그 존재를 알기 오래 전부터 아메리카 대륙은 아메리칸 원주민이 살던 땅이었다.
        그들은 독자적인 문명 사회를 구축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생명을 존중하면서 살아왔다.

        우리가 알고있는 「잉카문명」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잉카제국 이전에도 많은 문명들이 존재했으나 그들 문명과 잉카제국은 문자가 없었던 관계로 그들의 생활양식 따위에 관한 것들은 단정할 수는 없고, 단지 그들의 유물과 "잉카제국"을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의 기록과 잔해만 남은 "마추피추"의 유적에서 그들의 화려한 문명을 짐작할 뿐이다.

        잉카가 대제국으로 존재했던 기간은 1세기 남짓한데 1430년대까지는 "쿠스코"계곡을 통치하던 지방왕국에 불과했지만 그 이후 정복을 거듭하다 안데스 지역에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1532년말 황금을 찾아 스페인에서 온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에 의해 이 "잉카제국"의 마지막 왕인 "아타왈빠" 왕은 화형선고를 받지만 화형대신 목이 잘린다는 조건으로 카톨릭으로 개종하고 처형당함으로써 이 「잉카제국」은 종말을 맡게 된다. (잉카인들에게는 내세라는 것이 존재했기 때문에 육체가 없어지는 화장에 대해 극도의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인디오들의 전통음악 연주를 금지시키고 스페인 음악을 연주하도록 장려했지만, 인디오에게 음악은 생활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금지시키기가 아주 어려웠다.

        즉, 잉카인들은 대지의 여신의 은혜에 감사할 때, 신에게 기원할 때 그리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할 때도 음악은 연주와 노래, 춤을 포괄하는 의사소통수단이었다.

        1614년 페루의 수도 「리마」 대교구의 카톨릭 주교는 인디오들의 고유악기 모두를 사악한 악마의 도구로 여겨 모든 악기들을 수거해 불태웠고, 이 악기를 만드는 자나 연주하는 자 모두를 처형했다.

        그러나 이런 박해 속에서도 잉카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버리지 않았다.
        문자를 가지지 않았던 그들에게 노래와 춤은 민족 생존의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으므로 아버지로부터 손자에 이르기까지 후손들에게 대를 이어 전승, 보존해왔던 것이다.


        - 태양신에게 바치는 노래

        스페인은 페루를 식민지로 건설해 원주민들에게 포악한 식민통치를 이어오던 중,
        200여 년이 흐른 1700년 중엽 스페인 학정에 대해 반란이 일어난다.
        그 주모자는 인디오와 스페인 혼혈인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캉키Jose Gabriel Condorquaqui"로, 그는 예수회대학에서 교육을 받았고 라틴어를 능숙하게 읽고
        에스파냐인처럼 에스파냐어를 구사했다.

        모계 쪽으로 볼 때 그는 1572년에 톨레도 부왕의 손에 처형 당한 식민통치시대
        마지막 잉카인 "투팍 아마루Tupac Amalu"의 직계 후손이었고, 그는 살해된 선조의 후예임을 강조하는 뜻에서 자신의 이름을 "투팍 아마루2세"라고 바꿨다.

        그는 결국 1781년 나이 39살에 스페인군에 체포돼 선조보다 더욱 무시무시한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죽음을 맞았다. 그것은 아내와 아들, 동료들의 처형을 지켜본 후 혀가 뽑혔고, 네 마리의 말에 그의 사지를 묶어 극형을 가한 짓이었다.

        그러나 말들이 제대로 그의 사지를 찢지 못하자, 처형자들은 그의 머리를 자를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의 찢겨진 사지를 네 곳의 반란지로 보내 비참한 최후와 함께 반락은 일단락되었다.

        죽은 그가 콘도르로 환생해 안데스 창공을 날으며 원주민 인디오들을 보호한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