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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 鄧麗君등려군 1985年 도쿄 공연실황.

구름에 달 가듯이 2011. 5. 29. 14:21

 

 

 

 

鄧麗君등려군 다시보기..


등려군이 지난 20여년간 중국권 음악계의 여왕으로

자리하고 있는 동안에
우리 나라에는 한번도 소개된 적이 없었다.
그러다 진가신陳可辛 감독이 연출을 맡고 여명黎明과

장만옥張蔓玉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홍콩 영화 첨밀밀甛蜜蜜과 함께 등려군과 그녀의 노래는
국내에 본격적으로 상륙하기 시작했다.

'첨밀밀甛密密'에서 여소군(여명)은 이교(장만옥)에게

끌리는 마음을 통제할 수 없고,
이교는 여소군과 함께 있을 때에만 마음의 평화를 맛본다.
그들의 사랑은 처음에 우정처럼 시작되었다.
순진하다 못해 어리숙하기까지 한 여소군은
악착같고 약삭빠른 이교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상살이를 배워나가는 것이다.
이 상반된 두 캐릭터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뜻밖에도

중국의 대중가수 등려군(떵리쥔)이다.

그들은 설대목에 등려군 불법테이프를 팔다가 쫄딱 망하고,
그날 밤 얼떨결에 몸을 섞고, 길거리에서 덩뤼쥔을 목격한

다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심지어 10년 세월이 흐른 다음
타향만리 뉴욕의 한 귀퉁이에서 그들을 마주 서게

만드는 것도 등려군의 사망소식이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인연의 모든 갈피마다

 사랑의 메신저처럼 등려군이 존재해온 것이다.


그녀가 1995년 5월8일 천식으로 인해 태국에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지금도 그녀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르고 끊임없는

추모열기가 지속되고 있다.
중국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두 명의 鄧씨가 있다.
무엇이 그녀 생전 생후의 이 뜨거운 인기를

유지케 하는 것일까?

중국현대사에는 하나는 당연히 중국개혁개방의

총설계사인 떵샤오핑(鄧小平)으로
현재 중국의 질풍과도 같은 발전을 낳은 장본인이다.

그러나 또 다른 鄧씨는 바로 중국문화개방의 전위역할을

한 등려군이 주인공이다.
낮의 세계는 떵샤오핑이 휘어잡은 중국을,

반입금지 청취금지령에도 불구하고
거친 개혁의 삶에 지친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목소리만으로 밤의 세계를 지배해온 이가 바로

그녀이기 때문이다.

실로 조국인 대만을 비롯해 홍콩 그리고 대륙까지

 전해진 그녀의 인기는
70,80년대를 풍미하며 서로 너무도 다른 길을 걷고 있던
대만, 홍콩, 중국대륙을 연결시켜주는

최대의 민간매개체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아직도 중국인의 가슴에 살아남아 있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등려군은 1953년 1월29일 대만에서 5남1녀 중

넷째로 출생하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중국대륙 허베이(河北)출신의

국민당 군인이었다.
아버지가 퇴역 후,
집안에 별다른 수입원이 없어 그녀는 매우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내야 했다.
가족들의 생활은 별다리 나아질 방법이 없었다.
결국 등려군은 13세부터 어머니의 손을 잡고

밤무대를 전전하면서
노래를 불러 집안을 보살펴야 했으므로 자연히

학교는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등려군 16세 되던 1970년에 가수로 정식 데뷔하였다.
당시 대만의 최고 인기 드라마였던
[晶晶정정]의 주제곡

[我一見你就笑아일견니취소]를 부르면서
바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였다.
1974년에 테레사Teresa라는 영문이름으로 일본

 시장에 음반을 내고
정식으로 일본 무대에 서게 되었으며,
그녀의 일본생활은
그녀를 세련된 창법으로 다듬어진 프로가수로

 거듭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맑고 고운 미성에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맘을 끄는 따스함이
그녀의 목소리에서 스며 나왔다.
1974년 일본 신인가수상을 수상했고,
기록적인 음반판매고를 기록하면서 그 지명도가

더욱 높아졌다.
데뷔 5년만에 대만뿐만 아니라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지까지 그녀의 명성은

뻗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대만군인들에게 있어 그녀는 거의 여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대국인 중국과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언제 발생할지

몰랐던 당시의 대만군인들에게
그녀의 노래는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님은 언제 오시나요(何日君在來)'는 군인들의

애국가와도 같은 노래가 되었다고 한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로 인해 그녀는 군인에 대해서는

 상당한 애착을 보였는데,
그녀를 부르는 부대가 있을 경우에는 언제나 열일을

제쳐 두고 공연에 임했다고 한다.
이러한 요인으로 대륙에서 특별히 강력하게

그녀의 노래를 금지시켰다.

특히 '何日君在來'는 제목이나 노래 속에 담긴 가사의

의미가 대륙에서 쫓겨난

국민당 정부의 대륙복권의지가 담긴 불온한 노래로

지정되어 이 노래를 듣거나 부를 경우는

공산당으로부터 가차없는 처벌을 받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미 그녀에게 뺏겨 버린 마음을 법으로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파도처럼 밀려와 단 시일 내에 대륙인들의 마음을

휘어잡아 버린 것이다.
또한 그녀는 푸근하고 따스한 인상만큼이나

 생전에 좋은 일들을 많이 하였다.

6.4천안문사태 이후, 외국을 떠돌던 망명자들을 위해
어디든 쫓아가서 노래로 위로를 해주었는가 하면
수많은 고아를 비롯해 상처받은 영혼이 있는 곳은

 언제나 그녀가 있었다.

때문에 95년 그녀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 후 2년 후에 있었던 떵샤오핑의 사망에 버금가는

충격을 안겨 주었다.
전 세계 곳곳에 있는 그녀의 수많은 팬들의 애도행렬이

 이어졌다.
동시에 당시 출반되어 있었던 그녀의

음반들이 품절되는가 하면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자란 대만의 40대들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그녀의 무덤 앞에 목놓아 울기까지 하는 모습이

그대로 TV에 방영되기도 하였다.

그러한 그녀의 죽음이후 대만을 비롯해 홍콩 중국 일본 등
그녀의 팬들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그녀를 기념하기

 위한 많은 사업들이 펼쳐져 왔다.

그녀가 숨지기 전까지 살았던 대만 스탠리마켓

근처에 있는 그녀의 저택은
현재 기념관으로 개조되어 그녀를 그리워하는

많은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녀의 대표곡 몇가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중국어에 입문하는 학생들이라면 최소한 이중 하나는

반드시 들어봤을 것이다

 

 

10억의 박수 소리, 15주년 타이베이 콘서트
十億個掌聲, 15週年台北演唱會





邓丽君 十五周年巡回演唱会(台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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鄧麗君十億個掌聲金曲唱響演唱會

 

 

 

 언제 그대 다시 오려나 기념 등려군 특집/ 대만TV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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