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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낮 (홍상수, 김영호, 박은혜, 황수정, 2007)

구름에 달 가듯이 2011. 10. 26. 11:42

 

밤과 낮 (2007)

 

기본정보 드라마 | 한국 | 144| 재개봉 2009.01.29, 개봉 2008.02.28
 
감독 홍상수
 
출연 김영호(40대 화가, 김성남), 박은혜(유학생, 이유정), 황수정(화가의 아내, 한성인)... 더보기
 
등급 국내 청소년 관람불가   

 

줄거리

 

2007년 초여름, 대마초를 피우다 들킨 화가 김성남씨 파리로 도피하다! 국선 입선 화가인 그에게 파리는 언젠가 꼭 한 번은 찾아오고 싶었던 예술과 낭만의 도시. 그러나 구속을 피해 쫓기듯 찾아온 이곳에서의 생활은 허름하고 냄새 나는 민박집만큼이나 도망치고 싶은 현실입니다. 거리를 배회하거나 공원에서 소일하는 것 외엔 딱히 할 일도 없고, 혼자 두고 온 아내에 대한 애정과 염려는 지갑처럼 그를 따라다닙니다.

  그러나, 새 출발을 다짐 해보는 유부남 김성남씨. 민박집 아저씨에게 소개 받은 유학생 현주와 함께 한인 화가들과 만남도 갖고, 식당에서의 소일 거리도 찾아 다니며 낯선 도시에 적응해보려 노력합니다.

  젊은 미술학도 유정과의 아슬아슬한 만남. 들키지 않을 자신 있습니까? 현주의 룸메이트인 젊은 미술학도 유정. 김성남씨는 그녀와 달콤한 연애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의 아내로부터 듣게 된 임신 소식. 그리고 감춰져 있던 유정의 비밀을 알게 된 김성남씨. 아내와 유정 사이, 서울의 밤과 파리의 낮을 잇는 김성남씨의 이중 생활은 과연 어떻게 끝이 나게 될까요?

 

 

홍상수의 영화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날고기같아서 부담스러웠다.

양념에 버무려 지글지글 구워놓으면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을텐데

맨날 먹는 이 음식이 남의 살을 도륙해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굳이 이렇게 상기시켜 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아, 이 사람 괜히 불쾌한 사람이네.....'  

이러면서도, 신작이 나오면 끌려가듯 또 보러가곤 했다.  

 

홍상수의 여덟 번 째 영화, <밤과 낮>은 전작 <해변의 여인>에서 감지되었던

모종의 변화....그러니까 깊어진 김치 맛 같은 부드러움이 더욱 확실해진 작품이다.   

그런데 이게 홍상수의 변화인지...나의 변화인지...둘 다인지 분명치는 않다.

나로서는 그의 영화가 날고기에서 불고기로 바뀌었다고 단언할 근거는 없으나,

그의 날고기가 나를 예전만큼 불편하게 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아마 그가 매 작품마다 벗겨 놓으려 하던 허위의식에서 내가 좀 더 자유로워진 면도 있을 것이고,

내가 나이먹듯이 홍상수 자신도 자꾸 늙어가면서 좀 관대해지고 따뜻해진 부분도 있을 것이다.  

 

<밤과 낮>은 슬립스틱 코메디처럼 웃겨 보이지만 

실은 꽤 잔인한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다.  

(이게 이 영화의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늘 그렇듯이

보면서 내게 와 닿았던 느낌에 대한 사적인 감상일 뿐..)

예를 들어, 주인공 성남은 10년 전 애인이었고, 그를 위해 6번이나 임신중절을 했(다고 하)던 여인(미선)을

알아보지 못한다. 파리에서 우연히 그녀를 다시 재회한 다음, 옛 애인의 성적 위안을 원하는

그녀에게("그냥 한 번만 해...") 고상한 성경말씀을 들려주는 이성을 발휘한다.      

나중에 성남은 그녀가 아파트에서 투신자살 했다는 지역신문 기사를 읽게 된다.  

 

유부남하고는 안 사귄다던 유학생 유정은 알고보면 저질인데다 불쌍한 여자다.  

성남의 아이를 임신 한 것 같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그 날 (이것도 확실한 임신인지는 애매하다..)

성남에게 "너를 잊지 않을께.."라는 결별통보를 듣게 된다. 

이장면은 옛애인 미선과 오버랩될 수 밖에 없는데, 미선보다 나은 것은 그나마 그가 '기억'해준다고 약속한 것?

여기 저기 진심어린 '사랑해'와 '미안해'가 오고가지만 펼쳐놓으면 당혹스럽다.  

 

밤의 세계에 아내를 남겨 놓고 온 '장군감'의 기골장대한 숫컷에게 성경 한 권은 물 묻은 창호지나 진배없다.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졸지에 다른 시간에 존재하게 되어버린 성남의 아내 성인은

여자 특유의 현명한 직감으로 자기 남자를 되찾아오는데 성공하지만  

파리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스스로 직감에 눈을 감아야 할 입장이다.

잠꼬대까지는 막을 수 없겠지만. 

 

<밤과 낮>에서 이런 에피소드들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다른 일상들, 예컨대   

어느날 길가던 성남의 눈에 날벌레가 들어갔다거나

민박집 청소를 하고 있는데 향수냄새를 풍기는 여자를 계단에서 마주쳤다거나

거리 청소부가 물로 똥을 치우더라 라든가  

하늘에서 새끼 참새 한 마리가 떨어졌다는 식의 자질구레한 사건들과 

태연하게 함께 나열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의 실체다.

미선의 죽음은 신문에서 읽히고, 유정의 임신 여부는 확정적이지는 않다 (다행히도!).

정작 그를 행동하게 한 현실은 아내 정인의 급작스런 임신인데 그나마 거짓말이다.   

현실의 면모는 영화 속 '쿠르베'처럼 노골적이지 않고    

이처럼 자질구레한 일상 속에서 파편화되어 간접적이면서 관습적인 형태로 선택된다.

우리는 현실과 함께 있지만 늘 함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는다.  

유부녀인 옛애인이 무척 불행해 '보인'다거나, 새 정부가 임신을 '한 것 같다'거나하는 불편한 진실은

잡다한 현실의 소음에 가려 흩어진다. 우리는 진실 대신 편안한 관습을 선택한다.

(거짓말에 속아 서울로 돌아온 성남이 아내에게 차라리 고맙다는 태도를 보이는 모습을 보라...)

 

<밤과 낮>에서 홍상수는 우리에게 진정한 현실의 맛과 빛깔, 공기의 느낌까지 담담하게

일기 쓰듯이 또박 또박 적어보인다. 

그의 주문대로 서둘러 의미화 하지말고 그냥 담담히 즐기듯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뜻하지 않게 가슴이 뭉클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지리멸렬한 이 영화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나는 현실을 제대로 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용기가...)      

복잡하면서 단순하고, 깊으면서 천박하고, 추악하면서 동시에 숭고한

그래서 마음 한 구석이 짠하게 저려오는 그런 현실이 홍상수의 <밤과 낮>에 있다.

 

 

* 홍상수 영화를 보면서 배경음악을 의식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 영화에서는 베토벤 7번 2악장이

단연 귀에 들어온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돌이킬 수 없는>과 오버랩되어서 묘한 감정적 아우라를 남긴다.  

* 홍상수 영화에는 (거의 의도적인 듯) 스캔들을 일으킨 여배우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번에도 '히로뽕을 최음제인 줄 알고 먹었다'는 황수정이 성남의 아내역으로 나오는데, 과연 홍상수의 영화를 보면서 동시에 행실바르지 못한(?) 여배우에게 돌을 던지는 숫컷 짓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출처 : 블로그 > 오렌지숲(Orange trees)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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