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은 따뜻하다 / 정호승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든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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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 감상 : 정끝별·시인]
- 정호승(58)시인만큼 노래가 된 시편들을 많이 가진 시인도 드물다.
안치환이 부른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비롯해 28편 이상이다.
그의 시편들이 민중 혹은 대중의 감성을 일깨우는 따뜻한 서정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 '따뜻한 슬픔'으로 세상을 '포옹'하는 그의 시편들을 읽노라면
좋은 서정시 한 편이 우리를 얼마나 맑게 정화시키고 깊게 위로할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닫곤 한다. - 그는 별의 시인이다.
그것도 새벽 별의 시인이다. 별이란 단어를 그보다 더 많이 쓴 시인이 또 있을까.
그가 바라보는 별에는 피가 묻어 있기도 하고 새들이 날기도 한다.
그의 별은 강물 위에 몸을 던지기도 하고, 그 또한 별에 죽음의 편지를 쓰기도 한다.
어쨌든 그런 별들도 어둠 없이는 바라볼 수 없으며, 밤을 통과하지 않고는 새벽 별을 맞이할 수 없다. - 이 시는 '하늘에는 눈이 있다'라는 단언으로 시작한다.
눈은 '보리밭길'을 덮는 눈(雪)이기도 하고 '진리의 때'를 지키는 눈(眼)이기도 할 것이다.
눈 내린 보리밭길에 밤이 왔으니 '캄캄한 겨울'이겠다.
겨울의 캄캄하고 배고픈 밤은 길기도 길겠다. '가난의 하늘'이니 더욱 그러하겠다.
진리의 때가 늦고 용서가 거짓이 될 때, 북풍이 새벽거리에 몰아치고
새벽이 다시 밤으로 이어질 때 그 하늘은 '죽음의 하늘'이겠다.
그런데 그런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얼마나 따뜻할 것인가. - 우리 생의 팔할은 두려움과 가난과 거짓으로 점철된 어둠의 시간이다.
눈물과 탄식과 비명이 떨어진 자리에 피어나는 꽃, 그것이 바로 별이 아닐까.
'슬픔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의/ 새벽은 언제나 별들로 가득한('슬픔을 위하여')' 법이다.
어두운 현실에서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시인의 의지가 '별'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리라.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가장 낮은 곳에서 밝다. - 눈 내리는 보리밭길에 흰 첫 별이 뜰 때부터 북풍이 지나간 새벽 거리에 푸른 마지막 별이 질 때까지
총총한 저 별들에 길을 물으며 캄캄한 겨울을 통과하리라.
그 별들의 반짝임과 온기야말로 우리를 신(神)에 혹은 시 - (詩)에 가까이 가게 만드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