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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상기획(22)] 푸른 곰팡이(산책시1)/ 이문재

구름에 달 가듯이 2011. 5. 3. 19:04

 


 

              

    푸른 곰팡이- 이문재  (산책시1)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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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감상: 문태준·시인]
  • 이문재(49) 시인의 시들은 치열하고 내부가 끓고 있다.
    그의 시들은 결사(結社)를 한다. 주로 도시와 문명의 급소를 공격해 단숨에 제압한다.
    시 '푸른 곰팡이'가 실려 있는 두 번째 시집 '산책시편'(1993)은 시단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 시집을 통해 우리가 유토피아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도시적 공간의 무서운(파시스트적인) 속도에 대항해
    '게으르고 어슬렁거리고 해찰하는' 8편의 산책시(散策詩) 연작을 발표한다.
    그는 '아파트단지가/ 웨하스처럼, 아니 컴퓨터칩처럼/ 촘촘하게 박혀' 있는 곳을 느릿느릿 걷는다.
    그는
    '도시는 단 한 사람의 산책자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느림보는/
    가장 큰 죄인으로 몰립니다/
    게으름을 피우거나 혼자 있으려 하다간/
    도시에서 당하고 말지요/
    이 도시는 산책의 거대한 묘지입니다'('마지막 느림보-산책시 3')라고 썼다.
  • 시 '푸른 곰팡이'에서도 느림을 예찬한다.
    사랑도 산책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이 산책 같아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사랑은 불꽃처럼 일어나는 것이지만
    기다림과 그리움의 시간을 살면서 사랑은 무르익고 완성된다는 뜻 아닐까.
  •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써 보라.
    아무리 격렬한 사랑에 휩싸인 사람일지라도 백지를 앞에 두면 말문이 막힐 것이다.
    그러나 머뭇거림이 편지의 미덕. 지우고,
    생각을 구겨버리고, 파지(破紙)를 내는 시간에 우리는 사랑의 감정을 솔직하게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나흘을 또 기다려 보라.
    나의 편지가 사랑하는 이의 안뜰과 마루와 품에 전달되기까지의
    그 시간을 마른 목으로 가슴 설레며 살아보라.
    푸른 강이 흘러가는 그 기다림의 거리를 살아보라.
    그러는 동안 사랑은 푸른 강의 수심처럼 깊어질 것이다.
  • 요즘 이문재 시인은 따뜻한 체온의 '손'을 주목하고 있다.
    나와 당신 사이에 '내미는 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근년에 발표한 시 '손은 손을 찾는다'에서
    '손이 하는 일은/
    결국 다른 손을 찾는 것이다/
    오른손이 왼손을 찾아/
    가슴 앞에서 가지런해지는 까닭은/
    빈손이 그토록 무겁기 때문이다/
    미안함이 그토록 무겁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그의 시는 도시와 문명에 단호하게 맞서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속내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괸, 그리워하고 연민하는 사랑의 마음이 산다.

     

     
    출처 : 구름에 달 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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