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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상기획(49)] 바람의 말/ 마종기

구름에 달 가듯이 2011. 5. 3. 19:15

 


 

 

바람의 말 /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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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감상: 정끝별·시인]
  • 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마음이 울렁거리는 일이다.
    바람 불면 그곳이 어디든 따라 나서고 싶고,
    바람 들면 온몸이 저절로 살랑살랑 나부끼게 되고,
    바람나면 불타는 두 눈에 세상 보이는 것 아마 없으리.
    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사무치는 일이다.
    빈자리를 어루만지는 부재와 상실, 추억과 그리움으로 가슴이 시리고 뼛속까지 시리리.
    그리고 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다.
    물처럼 세월처럼,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지나고 나면 흔적도 없으리.

  • 삶이, 사랑이, 시(詩)의 말이 바람이라고 생각한 적 있다.
    바람(願)이라서, 바람(風) 같아서 간절한 것들이다.
    이 시를 읽노라면 간절하게 그리운 부재가 떠오르고, 간절하게 따뜻한 배려가 떠오른다.
    몸을 떠나 영혼으로 떠돌며 사랑하는 사람 곁을 지키던 영화 '사랑과 영혼',
    그 애틋한 바람의 영혼도 떠오른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사랑의 괴로움, 사랑의 피로까지를 함께하는 바람의 마음.
    그렇게 따뜻한 바람이라면 '가끔'이 아니라 매일매일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고 싶다.
    "목숨을 걸면 무엇이고/
    무섭고 아름답겠지./
    나도 목숨 건 사랑의/
    연한 피부를 쓰다듬고 싶다"('성년의 비밀')

  • 이 시는 조용필이 부른 '바람이 전하는 말'의 노랫말과 흡사하다.
    물론 이 시가 5년쯤 먼저다.
    의사이기도 한 마종기(69) 시인은 고희를 앞두고도 여전히 젊고 댄디(dandy)하다.
    어떤 선입관과 고정관념과 권위로부터 자유롭다.
    동화작가 마해송과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여성 무용가 박외선 사이에서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성장해 의과대학 재학 시절 시인으로 등단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40여 년간 방사선과 전문의로 지내며 시를 써왔다.

  • 그는 올해로 시력 49년을 맞는다.
    투명하면서 울림이 깊은 그의 시에 유난히 위로받고 행복해하는 마니아들이 많다.
    오롯한 그리움과 따뜻한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누군가 말했다. 그의 시는 '맹물' 같다고.
    어느 날 마시면 상쾌하고 시원하고, 어느 날은 목이 메고 어느 날은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고.
    "나는 이제 고국에서는/ 바람으로만 남겠네"('산수유')라는 그의 최근 시의 구절이 떠오른다.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라는 이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과 함께.
     그는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시민임이 분명하다, 저 바람처럼.

 

 
출처 : 구름에 달 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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