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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상기획(93)] 감나무/ 이재무

구름에 달 가듯이 2011. 5. 4. 08:28

 


 

 

    감나무/ 이재무

     

    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립 쪽으로는 가지도 더 뻗고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놓은
    붉은 눈물
    바람결에 슬쩍 흔들려도 보는 것이다
    저를 이곳에 뿌리박게 해놓고
    주인은 삼십년을 살다가
    도망 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오년인데……
    감나무 저도 안부가 그리운 것이다
    그러기에 봄이면 새순도
    담장 너머 쪽부터 내밀어 틔워보는 것이다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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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감상:정끝별·시인]
  • 소설가 현기영의 발문을 빌려 말하자면,
    좀 '지랄 같은 성깔'과 '흰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는 개구쟁이의 웃음'과,
    그리고 '시적 허기증'이라 할 만한 왕성한 창작 욕구가 가장 그답다고 한다.
    그가 바로 이재무(50) 시인이다.
    그의 시는 어렵지 않다. 고향과 유년에의 기억, 도시와 문명의 피로 등 자신의
  • 삶 체험을 진솔하게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는 "퇴고할 필요가 별로 없는 완전한 모습의 시가 초고부터 씌어진 경우 좋은 시가 많았다"고
  • 말한 적이 있는데, ]이 〈감나무〉야말로 단숨에 쓰여진 시임에 틀림없다.

  • 고향을 버리고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감나무 한 그루쯤은 담고 산다.
    흰 보석 같은 감꽃과 달착지근했던 그 꽃맛, 새파란 감잎과 툭 툭 떨어지던 풋감들이 만들어내는
  • 그 그늘, 꽃보다 더 고왔던 붉은 감잎과 그 거름, 감과 곶감과 까치밥의 그 달콤한 맛….
    그것들이 있는 풍경이란 하나같이 정답고 포근하다.
    이 고향 같은 '감'은 도무지 어디서 비롯된 이름일까.

  • 15년 동안을, 주인이 도망치듯 떠난 빈집에서 꽃을 내고 잎을 내고 감을 내며
    홀로 고군분투하는 감나무 한 그루가 있는 풍경은 애틋하다.
    성큼 들어설 주인을 마중이라도 하려는 듯 사립 쪽으로 가지를 내뻗고 있다.
    연초록 새순도 담장 너머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새순이 잎이 되고 그 잎이 질 때, 한 기다림을 다 살았을 때,
    그렁그렁 붉은 눈물을 매달고 바람의 안부에나 귀기울이는 것이리라.
    날렵하게 포착해낸 이 짧은 시의 여백에는 농촌의 붕괴와 이농 현상이 있고,
    한 가족의 곡절 많은 삶이 있고, 녹록치 않았을 도시살이가 있고, 무작정의 세월이 있고 계절이 있고,
    그리움과 기다림이 있고, 인정이 있고 섭리가 있다.

  • 이런 감나무는 또 어떤가.
    "저물 무렵 밭둔덕에 외로이 서 있는/
    늙은 감나무와 나란히 서서/
    인생의 황혼을 억세게 갈무리하시는/
     아부지의 등허리엔/
    살아온 날의 높고 낮은 등고선이/
    가파르게 펼쳐져 있다"(〈아부지〉).
  • 이 감나무는 주인과 함께 늙어가며, 뻗어가는 가지들을 잘 갈무리하고 있다.
     "초겨울 인적 드문 숲속/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 위태위태한 빨간 슬픔의 홍시/ 하나의 마음으로
  • 기다린다"(〈기다림〉). 이 감나무는 기다림을 완성시켜줄 '큰 입 가진 임자'를 기다리는 것이리라.
    고향이란 이런 감나무처럼 애틋하게 기다려주는 곳이다.
    고향에 대한 향수는 이런 감나무로 통하는 것이다.

  • 새순이 돋았으니 감꽃마저 지고 나면, 감이 열리고 감잎이 물들 것이다.
    그리고 까치밥 하나 오래 맺혀 있으리라.
    고향 빈집에 남겨두고 온 저 감나무는 그렇게 삼십년을 알콩달콩 한 식구처럼 살았으니,
    십오년에 또 십오년은 더, 피붙이처럼 그리워할 것이다.
    속을 바짝바짝 태우며 그리 오래 기다렸던 감나무니 그 감은 또 오죽 달 것인가.

 

 
출처 : 구름에 달 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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