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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를 위하여 / 진은영

구름에 달 가듯이 2011. 5. 19. 04:55

 



악어를 위하여

진은영


자 덤빌 테면 덤벼봐
악어는 정글 속 가장 깊은 곳에서
이를 갈며 기다리고 있다
복병처럼 숨어서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세상이여
나의 납작해진 뒤통수를 보아라

질척질척한 늪, 진흙 속을 뒹굴며 헤엄치다
가끔 열려 있는 하늘 위로 홀로 비상하는 것들을 보면
악어는 입을 쩍 벌린다
단 한 입에 끝내주겠다는 듯이

이 정글의 어떤 사내도
그놈을 길들일 순 없지
어느 새벽녘, 여린 풀잎의 꿈들이
놈의 슬픔을 어루만질 때
진흙 밑에 숨겨오던 희고 부드러운 배를
슬쩍 드러내겠지만

정오의 햇살 사이로 숲이 뜨거운 입김을 뿜어내는 계절
몇 발의 총성이 울리는 어느 날
사냥꾼들은 맥주로 검은 수염 적시며
승리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 순간에도
그 이름을 두렵게 불러볼 것이다

악명 높은 동물이여
죽어서 고급 피혁 제품으로 변신한 뒤에도
복종하지 않는 자의 최후가 갖는 비장미를 자랑하며
번쩍이는 그 이름. 으, 악,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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