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방 ■/■ POP ... artist

Celine Dion - Calling You

구름에 달 가듯이 2011. 11. 1. 11:19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토니 브랙스톤(Toni Braxton) 등과 함께 1990년대 중

후반의 팝 시장을 천하 삼분했던 셀린 디온(Celine Dion)은

디바(diva)의 정점을 대표하는 여가수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머라이어 캐리에게 밀려 만년 2등 가수의 한을 삭였던

그녀는 영화 < 타이타닉 >의 테마송인

‘My heart will go on’을 통해 단숨에 넘버원 팝 싱어의 반열에 올랐다. 캐나다에서 유일하게

불어를 쓰는 퀘벡 지방의 작은 집에서 1968년 첫 울음보를 터트린 셀린 디온.

그녀는 합계가 무려 16명인 대식구의 막내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또한 부모님 모두 노동자

출신이었기에 물질적으로 그다지 풍요롭지 못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러나 음악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부모님의 우산 아래 셀린 디온의 음악적 재능은

어린 시절부터 싹을 맘껏 틔웠다. 5살 때부터 부모님의 피아노 바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12살 때에는 ‘It was only a dream’이라는 최초의 자작곡을 썼다는 등의 후일담들이 잘 증명해준다.

오빠와 어머니의 전폭적 지원 하에 상기한 곡을 테이프화(化)했던 셀린 디온.

그녀는 그것을 매니저인 르네 앤젤릴(Rene Angelil)에게 보낸 뒤, 답변을 기다렸지만 묵묵 부답이었다. 허나 독촉 전화를 받고 그제서야 셀린 디온의 숨은 재능을 발견한 르네 앤젤릴은

그 날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고 그녀는 정식 데뷔 코스를 밟기 시작했다.

(셀린 디온의 노래를 직접 들은 순간, 르네 앤젤릴은 그녀가 곧 인터내셔널

슈퍼 스타가 될 것임을 확신했다고 한다.)

1983년 15살의 나이에 발표했던 음반 < D’Amour Ou D’Amite >을 통해 캐나다 출신

아티스트로는 최초로 프랑스에서

골드 레코드를 기록하고 일본에서 개최되었던 야마하 작곡 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는 등,

이후 셀린 디온의 행보는 거칠 것 없는 탄탄대로였다.

또한 그녀는 그 즈음 조우했던 베테랑 프로듀서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와의 인연 덕에

걸프 전 참전 용사들을 위한 기획 앨범 < Voices That Care >에 참여,

수많은 팝 필드의 거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미국 시장 진출이라는

‘좁은 문’뿐인 듯 보였다.

이를 위해 그녀는 우선 음악 외적인 면에서 파격적 변신을 단행했다.

팝 계의 별이 되기 위해서는 음악만큼이나 이미지 메이킹 또한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

동시에 셀린 디온은 영국의 랭귀지 스쿨에서 언어 교육을 받으며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춰나갔다.

어느새 그녀는 틴에이저에서 성숙미를 내뿜는 여인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피드백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1990년에 발매했던 처녀작 < Unison >(74위)이 각각 빌보드 싱글 차트 35위와 4위를

기록한 ‘If there was (any other way)’와

‘Why does my heart beat now’의 선전에 힘입어 꽤 괜찮은 성적표를 받았던 것.

허나 정작 그녀를 꼭지점으로 견인했던 곡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테마였던

‘Beauty and the beast’였다.

차트 1위를 단박에 꿰찬 곡은 그녀에게 1992년 그래미의 팝 듀오/그룹 부문 트로피를

안겨주며 이후의 성공 시대를 예감케 했다.

또한 2집 앨범인 < Celine Dion >(1992)에도 수록되어 소포모어 징크스를 깨부수는데

일등 공신의 역할을 해주었다.

곡 외에 다이안 워렌(Diane Warren) 작곡의 ‘If you asked me to’(4위),

‘Nothing broken but my heart’(29위),

‘Love can move mountains’(36위) 등이 팬들의 애정 공세를 한 몸에 받았다.

같은 해에 내놓았던 영화 <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의 주제곡인 ‘When I fall in love’

(23위) 역시 대박이었다.

2년 뒤인 1994년에는 셀린 디온의 인생에 있어 중대한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매니저였던 르네 앤젤릴과의 결혼이 바로 그것.

1988년부터 비밀리에 연인 관계를 유지해왔던 둘은 6년 뒤인 1994년에야

그 사실을 발표하고 몬트리올의 노틀담 성당에서 결혼,

세간을 놀라움 속에 빠뜨렸다. 정확이 배가 되는 나이차도 화제거리를 양산하기에 충분했다.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은 덕분인지 셀린 디온의 정상을 향한 질주는 도무지 멈출 줄을 몰랐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5년 간, 무려 6장의 앨범을 녹음했다는 사실이 주는 양적

포만감부터가 남달랐다.

1993년의 < Colour of My Love >(4위)가 첫 테이프를 끊으며 제니퍼 러시(Jennifer Rush)의 곡을

리메이크한 ‘The power of love’(4주간 1위),

그리고 ‘Misled’(23위) 등의 히트 넘버들을 배출했다. 1994년과 1995년에 셀린 디온은

두 장의 불어 LP를 내놓으며 음악적 본령을 되새김질하는 기회를 가졌다.

제베타 스틸(Jevetta Steele)의 팝 클래식인 ‘Calling you’를 수록한 < Live A L’olympia >와

장자크 골드만이 프로듀스해준 < D’eux >이었다.

특히 후자는 지금까지 800만장을 세일즈, 가장 많이 팔린 샹송 작품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절정의 순간은 단연코 1996년의 팝 마스터피스 < Falling Into You >였다.

현재까지 미국 내에서만 집계된 판매량이 1100만장인 작품은 그 해 그래미에서

‘팝 앨범’과 ‘올해의 앨범’, 두 개 부문을 석권하며 엄청난 위세를 떨쳤다.

< 업 클로즈 앤 퍼스널 >의 테마송이자 다이안 워렌이 써 준 ‘Because you loved me’

(1위)를 위시로 팝 고전을 다시 부른 ‘All by myself’(4위), ‘It’s all coming back to me mow’

(2위) 등이 차트에 핵 폭탄을 마구 투하했다. 어디 이 뿐이겠는가. 같은 해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이 감독한 블록버스터 무비 [타이타닉]의 주제곡

‘My heart will go on’(14주 연속 1위)은 더했다. 또 다시 그래미 두 개상을 차지하는 등, ‘

셀린 디온을 모르면 간첩’일 정도의 상황을 연출했다.

곡이 수록된 1997년의 앨범 < Let’s Talk About Love >(1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두 음반의 합산 판매고가 무려 6000만장을 상회했다.

이 시기를 전후해 그녀는 실로 당대에 무적, 팝 계 최고의 디바 자리에 우뚝 섰다.

그간 참여했던 뮤지션들을 포함해 새로 가세한 조지 마틴(George Martin), 비지스(The Bee Gees),

캐롤 킹(Carole King),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등,

후자에 참여한 초특급 아티스트들의 면면만 살펴봐도 당시 그녀의 입김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를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이후 셀린 디온은 크리스마스 스페셜 반인

< These Are Special Times >(1998, 2위)와 샹송 앨범 < S’il Suffisatt D’aimer >(1998)를

선보이고 베스트 컬렉션인 < All The Way: A Decade of Song >(1999, 1위)을 내놓는 등,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남편의 후두암 투병이라는 절망적 사건이 발발한 때도 이 즈음이었다. 비극이 종결되고

셀린 디온에게 행복이 찾아왔던 때는 2001년이었다. 체외 수정에 성공하며 그토록 소망했던

아이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남편의 증세도 나날이 호전되는 등, 셀린 디온이 가정에서

본업으로 컴백할 기운이 날로 충만해져 갔다.

그리고 2002년, 무려 5년 만에 출시했던 정규작 < A New Day Has Come >은 그녀의 디스코그라피

중 최초로 발매 첫 주에 정상에 등극하며 변함없는 팬 베이스를 과시했다.

허나 뒷심 부족을 드러내며 전성기 시절에는 많이 못 미치는 결과를 얻고 말았다.

현재 셀린 디온은 1년 만에 신작 < one Heart >를 내놓으며 팬들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2003/04 배순탁(greattak@izm.co.kr) 오이뮤직 머라이어 캐리가 있고 휘트니 휴스턴이 있지만 이들

못지 않게 지난 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가수가 셀린 디온(Celine Dion)이다.

흔히들 이들을 오페라의 주역가수에서 나온 말로 최고 인기의 여가수를 의미하는

어휘인 디바(diva)로 일컫는다.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가 팝 음악계의 디바 시대를

이끌었다면 셀린 디온은 디바 시대의 정점에 선 여가수라고 할 수 있다.

셀린 디온은 같은 음반회사 소니 뮤직에 소속된 머라이어 캐리에 밀려 90년대

중반까지 만년 2등 가수였다.

하지만 셀린 디온이 부른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곡 ‘나의 마음은 영원할 거예요

(My heart will go on)’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그 동안 명실상부한 공동 1위였던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이

모두 셀린 디온의 밑으로 내려앉고 말았으며

급기야 ‘셀린 디온 격파’를 외치며 함께 듀엣 곡을 내놓는 공동 대항전선을 펴기도 했다.

근래 셀린 디온의 위풍당당한 기세를 이보다 잘 말해주는 단서도 없을 것이다.

1998년 연말호에서 영국의 잡지 ‘Q’는 소니 뮤직의 통계를 빌어

“지난 30개월 동안 셀린 디온은 매 1.2초마다 한 장의 앨범을 팔았다”고 보도했다.

96년 발표한 앨범 < 너에게 빠져 (Falling into you) >가

그때까지 세계적으로 2500만장, 97년 말에 나온 후속 앨범 < 사랑을 얘기합시다

(Let`s talk about love) >가 2400만장이라는 경이적 판매고를 수립한 것을 두고

시간당 수치를 계산한 것이다. ‘1초당 한 장’의 파죽지세는 이후에도 변함없어

현재 두 앨범은 모두 3000만장을 돌파했으며

이어서 프랑스어 앨범과 히트곡 모음집도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다.

셀린 디온이 이처럼 가공할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노래를 잘하기 때문’이다.

참 단순한 설명이지만 가장 확실한 분석이다. 일례로 셀린 디온의 히트송

‘이제 모두 나한테 되돌아오네요

(It`s all coming back to me now)’를 들어보면 왜 때로 ‘질릴 정도로 노래를 잘한다’는

평을 듣는지 알게 된다.

셀린 디온은 엄청난 보컬의 파괴력이 주무기이다. 쉬지도 않고 20곡을 내리 한결같이

높은 음으로 질러대는 놀라운 힘을 보유하고 있다.

가창력이 뛰어난 다른 여가수들과 바로 이 점에서 다르다.

머라이어 캐리나 휘트니 휴스턴의 무대는 정적이고 우아한데 반해서

셀린 디온의 공연은 열띠고 힘이 넘친다.

공연장은 그래서 어떤 헤비메탈 그룹의 무대 못지 않은 열광의 도가니를 연출한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감상하더라도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만끽한다. 한마디로 시원하다.

이런 에너지와 파워 말고도 그녀를 당대 톱 가수로 부상시켜준 또 하나 원동력이 있다면

그것은 가사 해석이 아주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결코 억지로 질러대지 않는다.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미리 짜놓은 적은 없다. 노래 부르기란 기본적으로

첫 키스나 첫 사랑을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키스나 포옹할 때 미리 리허설하는 사람이 있는가?

또 어떤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치르는가?”

마치 실제처럼 가사의 감정을 충분히 살리되 정해진 공식대로 노래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셀린 디온은 철저히 백인 풍의 노래를 부른다는 점에서도 딴 가수와 차별화된다.

머라이어나 휘트니를 비롯해서

근래 디바들 노래는 흑인이건 백인이건 흑인음악 즉 리듬 앤 블루스의 느낌이 녹아있다.

하지만 셀린 디온은 그러한 공통분모를 배격하고 철저히 백인 스탠더드 팝을 구사한다.

여전히 흑인음악이 친근감이 덜 한 유럽의 기성세대 음악팬들이 이 때문에 셀린 디온에게 열광한다.

캐나다 퀘벡 태생인 그녀는 캐나다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가수이기도 하다.

캐나다 음반산업협회는 올해 초 셀린 디온이 지난 한 세기에 걸쳐 국내와 국외에서

가장 음반을 많이 판 캐나다가수라고 공식 발표했다.

1999년 말 캐나다의 음반판매고는 9백만장으로 어떤 캐나다가수보다 많았으며 해외에서는

1억1천장을 넘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이다.

근래 최고인 샤니아 트웨인과 브라이언 아담스도 그녀에게는 역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는 물론 특히 퀘벡과 같은 문화권인 프랑스도 셀린 디온을 ‘국민가수’ 또는

‘국보급 가수’로 떠받든다.

프랑스 팬들에게 인기는 거의 절대적이어서 프랑스정부가 수여하는

문화훈장을 이미 두 차례나 받았다.

셀린 디온도 이를 의식해 정기적으로 불어음반을 발표하고 있다.

셀린 디온의 지난 94년 말 결혼은 특급화제였다.

1968년 생으로 스물 여섯이던 그 해 그녀는 정확히 나이가 배인 52세의 매니저

레니 안젤리와 몬트리올 노틀담 성당에서 웨딩 마치를 거행했다.

어렵던 시절 자기 집까지 저당 잡혀가며 셀린의 음반작업을 주선한 매니저와 결혼하자

사람들은 사랑의 결실임을 인정하면서

도 요즘 가수치고는 드물게 ‘의리형’ 인물이라고 셀린 디온을 높이 평가했다.

너무도 바쁜 스케줄로 가정생활에 여유가 없는 관계로 아직 레니와의 사이에 자식 소식은 없다.

남편이 나이가 많은 탓인지 더욱이 사람들은 언제 그녀가 아기를 가질 것인가에 관심을 갖는다.

얼마 전 타블로이드 신문 ‘내셔녈 인콰이어러’는 “셀린이 체외수정을 통해

현재 쌍둥이를 임신했다”고 보도했지만

셀린 디온 측은 이를 완강히 부인하며 그 신문에 대해 2천만달러의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셀린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여가수임을 웅변하는 에피소드들이다.

지난 91년 ‘지금 내 심장이 어디서 두근거리나요(Where does my heart beat now)’를

차트 상위권에 올려놓은 이래

무수한 히트퍼레이드를 펼치며 그녀는 ‘90년대의 가수’로 영광의 나날들을 보냈다.

휴식 후 내후년에 신보가 나오게 되면 다시 광풍을 몰아칠 것이 확실시된다. 현재진형형이라

실감은 나지 않지만 분명 셀린 디온은 ‘살아있는 전설’이다.

'■ 음악방 ■ > ■ POP ... artist' 카테고리의 다른 글

Timi Yuro - Hurt  (0) 2011.11.01
Bruce Springsteen - Youngstown  (0) 2011.11.01
Bob Marley - Redemption Song  (0) 2011.11.01
Roy Orbison - Blue Angel  (0) 2011.11.01
Robert Palmer - Bad Case of Loving You  (0) 2011.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