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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화의 역사

구름에 달 가듯이 2007. 10. 31. 14:16
  
건원중보(앞면)                  건원중보(뒷면)

성종15년(996년)에 주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乾元重寶(건원중보) 뒷면 東國(동국)은 우리나라 최초의 주화로 알려져 있다. 건원중보는 중국의 당 숙종 2년 (759년)부터 주조된 엽전인데 중국의 건원중보와 구별이 어려워 상, 하부에 "東國"자를 앞면으로 내어 동국중보를 만든 것이 우리나라의 이름을 가진 최초의 주화가 되었다.

은을 재료로 하여 우리나라 지형을 본 따 만든 소은병
1101년 고려 숙종은 은 1근으로 우리나라 지형을 본 따 만든 은병을 발행하였다. 은병 1개의 가치는 포목 100필에 해당하는 고액으로 주로 국가간의 교역에 사용되었다. 그 후 은의 조달이 힘들어 지고, 동을 혼합한 위조가 성행하자 1331년 은병의 크기를 크게 축소한 소은병을 발행하였으나 이 역시 위조가 나돌아 화폐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어 1408년 유통이 금지되었다.

정확한 양의 순은으로 만들어 교환과 가치저장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칭량화폐

성종15년(996)에는 거란의 침략을 받아 사회가 불안정했던 시기였지만 겨우 무문철전을 주조할 정도로 문화수준이 낮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무문전은 성종 15년 철전과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고려 고분에서 출토된 무문철전과 무문동전은 유통수단으로서 제조된 것이 아니라 부장용(副葬用)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로부터 숙종대에 이르기까지 東國通寶(동국통보), 삼한중보(三韓重寶), 三韓通寶(삼한통보), 海東重寶(해동중보), 海東通寶(해동통보), 海東元寶(해동원보) 등 8종이 주조되었으며 읽는 방법이나 서체를 세분하면 약 100여종에 이른다. 또한, 동전의 명칭에 三韓, 海東, 東國 등은 우리나라의 부르는 이명이나 별호로써 중국과 일본의 것과 구별된다.

 

조선왕조에서는 '조선통보', '십전통보', '상평통보'를 발행하였다. '조선통보'는 세종 5년(1423)에 해서체로, 인조 11년(1633)에 8분 서체로 각각 발행하였으며, '십전통보'는 효종 2년 (1651)에 발행되었다.
조선시대의 화폐를 대표할 수 있는 '상평통보'는 숙종 4년(1678) 이후 고종 25년(1888)까지 200여년동안 주전소(鑄錢所), 전가(錢價), 서체(書體), 부호(符號), 천자문순(千字文順), 숫자순, 오행순(五行順) 등으로 나뉘어져 약 3000여 종류가 발행되었다.


세종 5년(1423년)조선시대 최초의 동전인 '조선통보'의 발행을 보게 되었다. 정부는 조선통보의 유통을 촉진하기 위하여 '조선통보 전용령'을 공포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하였으나 잘 유통되지 않았고 면직물류의 포화가 주로 유통되고 있었으며, 소액 거래에는 미두(米豆)가 사용되었다.


효종 2년(1651) 7월 우의정 한흥일의 건의에 따라 민간에서의 사주전(私鑄錢)이 허락되었으며 같은 해 11월에 화폐유통을 적극 장려할 목적으로 '행전사목(行錢事目)'을 제정 실시하였는데 그 방법의 하나로 백성들이 동전 50문씩 지니고 다닐 것을 의무화하였다. 이상의 사주전허락은 50문씩 동전을 지니고 다녀야 되는 의무수행에 따른 불편을 덜기 위하여 '십전통보(十錢通寶)'를 주조하였을 것으로 믿어진다.

우리나라 '별전'은 조선조 숙종 4년(1678)부터 주조하기 시작한 상평통보의 발행과 그 역사를 같이 했다고 한다. 즉 상평통보의 주조시 주전관인 호조에서 그 재질과 중량등을 시감(詩監)할 때 만들어진 일종의 지주화 내지 기념화로서 법화인 상평통보처럼 유통되지 않고 당시의 왕실 또는 지체 높은 사대부 계급의 기호품으로 애용되었다.

식물전
부조전
실패전
부채전
식물전
동물전
동물전
근대주화는 조선시대 말기부터 대한제국시대까지의 화폐로서, 화폐제도를 서구식으로 개혁하기 위해
전환국을 신설하여 금, 은, 동, 청동 등의 소재로 압인방식에 의해 발행한 주화이다.

개항이래 외국상인들이 왕래하게 되어 외국 화폐가 널리 유통되고 있었는데 그 소재는 모두 은인데 반하여 우리나라의 상평통보는 구리로 만들어져 있어 국제거래상 아주 불편하였다. 그래서 고종19년(1882)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은화인 대동일전, 대동이전, 대동삼전이 제조되어 전근대적인 상평통보와 근대적 화폐라고 볼 수 있는 대동은전이 나란히 유통되었다.


중국에서 사용된 은중량 통화의 하나로서 말굽은이라고도 한다. 마제은은 큰 거래나 저축용으로 주조된 것이며 우리나라에서는 1882년 근대전인 대동은전의 원료로 사용하였으나 곧 품귀현상으로 인하여 대동은전 제조에 차질을 빚어 대동은전이 사라지는 원인의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고종 20년(1883)에 경성에 조폐기관인 전환국을 설치하여 상시로 주화를 주조하게 하였다. 이와같은 상설 조폐기간이 설립하게 된 동기는 극심한 궁핍에 빠진 국가재정상 급하게 필요되는 당오전을 많이 또 속히 주조하여 조정에 공급하는데 있었다.


고종 29년(1892.5) 일본에서 수입되는 주화용 원료운반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인천으로 전환국을 이전하였으며 닷량은화와 한량은화, 두돈오푼 백동화, 오푼동화, 한푼동화 등이 발행되었다.


우리나라는 격증하는 화폐수요량에 대처하기 위하여 대일차관으로 인천전환국 확장공사가 한창 진척되고 있을 무렵 고종황제의 명에 의하여 전환국을 용산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광무 4년(1900) 건축을 마치고 광무 5년(1901)부터 본격적인 화폐제조를 시작하였다.


전환국이 폐지된 후 광무 9년(1905) 금본위제도를 확립하고 이십원, 십원, 오원 등 금화 3종과 반원,
이십전, 십전 등의 은화와 오전 백동화, 일전, 반전동화를 일본 오사카 조폐국에 의뢰하여 제조하게
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후 우리나라의 주화는 자취를 감추었고 일본이 발행한 주화를 사용하였다.
1950년 6.25 동란이후 급등을 계속하던 물가가 1958년에 이르러 크게 안정되고 산업생산도 안정된 성장을 계속하여 화폐가치에 대한 신임이 크게 확보되자 한국은행은 화폐체계의 정비와 제조비 절감 및 소액거래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1959년 10월 미국 필라델피아 조폐국에서 제조 도입된 십환 황동화, 오십환 양백화, 백환 백동화를 발행함으로써 실로 반세기 만에 우리의 주화가 재등장 하게 되었다.

1966년 한국조폐공사기술에 의해 십원, 오원, 일원 등 3종의 주화가 제조되었으며 1970년 11월에 100원 주화, 1972년 12월에 오십원 양백화가 발행되었다.1982년 6월에 통용주화로서는 최고 액면 주화로 오백원 백동화가 발행되었으며 이어서 1983년 1월 신화폐 체계정비에 의한 새얼굴의 주화 5종이 발행되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발행된 주화에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거북선, 무궁화 등이 도안되어 있으며 백환화에 새겨진 우남 이승만(雩南 李承晩)은 한일합방 이전에는 서재필의 영도하에 설립된 협성회, 독립협회등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으며 미국에 머물면서 조지 워싱턴 대학, 하버드 대학 등에서 수학, 1910년 프린스턴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 일 합방으로 귀국, 기독청년회를 중심으로 활약 1917년 안창호 등과 협의하여 뉴욕에서 열린 세계약소민족대회 대표를 파견시켰으며, 1919년 3.1운동후 본국에서 조직된 한성임시정부와 상하이에서 선포된 임시정부에서 각각 최고 책임자인 집정관 총재와 국무총리로 추대되자 미국 워싱턴에 구미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장으로 활약하였다. 광복후 귀국하여 우익 민주진영의 최고지도자로서 독립 촉성중앙협의회총재, 민주의원 의장, 48년 제헌국회 의장에 이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백환 1959. 10. 30 오십환 1959. 10. 20 십환 1959. 10. 20

1592년 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의 고안으로 건조된 세계최초의 돌격용 철갑전선(鐵甲戰船)이다. 이충무공(李忠武公)의 난중일기에 의하면 거북선에 설치한 포를 처음 쏘아 본 것이 임진년(1592) 3월 27일이며 처음으로 해전에 참가한 것은 사천(泗川) 해전이라고 한다. 거북선이 임진왜란때 돌격전선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였고 전란후에는 그 모양이 조금씩 변하여 용머리(龍頭)는 거북머리가 되고, 치수도 일반적으로 장대해지는 등 차차 크게 건조 되었는데 1795년(정조19)에 간행된 이충무공 전서에 "전라좌수영 거북선" 및 "통제영 거북선"의 그림과 함께 건조에 필요한 부분적인 치수가 어느정도 기록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십원 1966.8.16
동:88%  아연:12%
뒷 면
오원 1966.8.16
동:88%  아연:12%
일원 1966.8.16
동:60%  아연:40%

국보 제20호로서 다보여래의 사리를 모시어 세운 탑. 법화경에 의하면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이 경을 설할 때에 다보여래의 진신사리를 모셔둔 탑이 땅밑에서 솟아나오고 그 탑속에서 소리를 내어 부처님의 설법을 찬탄하고 증명하였다고 한다. 이를 근원으로하여 세워진 탑이 다보탑이다. 이탑의 구조는 대개 옥개아래 상층을 붙인 조형을 이루고 있다. 중국에서는 732년에 무현 동남쪽에 처음 세워졌으며 우리나라에서는 756년(신라경덕왕10)김대성에 의해 세워졌다.




백원 1970.11.20
동75% 니켈25%
오십원 1972.12.1
동70% 아연18%
니켈12%
십원 1970.7.16
동65% 아연35%
오원 1970.7.16
동65% 아연35%
일원 1968.8.26
알루미늄

국제식량농업기구(F.A.O)에서 세계식량의 날을 기념하기 위한 주화 발행 권장에 따라 우리나라 주식인 쌀을 주제로 벼이삭과 잎사귀를 사실적으로 도안하였다. 벼는 우리나라 농작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중국의 기록과 김해 패총(貝塚)에서 발굴되었으며, 탄화된 쌀덩어리 및 기타 유물등으로 미루어 보아 지금부터 약 2000년전에 벼를 재배하였음이 추정된다. 그러나 1976년 경기도 여주에서 지금부터 약 3000년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탄화미가 발굴됨으로써 우리나라 벼농사의 기원이 매우 오래전임을 추정할 수 있다.


오백원 1982.6.12
동75% 니켈25%
백원 1983.1.15
동75% 니켈25%
오십원 1983.1.15
동70% 아연18%
니켈12%
십원 1983.1.15
동65% 아연35%
   
오원 1983.1.15
동65% 아연35%
일원 1983.1.15
알루미늄
국가적인 경축일, 행사등을 기념하기 위하여 발행되는 기념주화는 1975년 광복 30주년 기념주화가 발행되었으며 1978년 제 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 기념은화 및 백동화 2종, 1981년 제 5공화국 출범기념 은화 및 백동화 3종, 1982년과 1983년 서울 올림픽대회 유치기념 은화 및 백동화 각 3종씩 2회에 걸쳐 6종이 발행되었다

1984년 천주교 전래 200주년 기념은화, 백동화 등2종, 1986년에는 제 10회 아시아 경기대회 기념은화, 백동화 등 5종 그리고 1987년과 1988년에 제 24회 서울올림픽대회기념 금, 은, 백동화등 32종을 발행하였다.

백원 백동화 (1975.8.15)

우리민족이 일제식민(日帝植民) 통치하에서 해방을 맞은지 30년이 되는 1975년 8월 15일 이날을 기념하여 순국선열(殉國先烈)의 독립정신을 찬양하고 그 정신을 계승발전 시키며 우리 민족의 염원인 평화적 남북통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뜻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액면가 백원의 기념주화를 발행하였다. 앞면 도안은 독립문과 뒷면에는 태극기를 든 여인상을 각각 주 소개로 하여 조국광복을 상징하였다.

오천원 은화
(1978.6.12)
오백원 백동화
(1978.6.12)

1978년 제 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됨에 따라 이 대회를 기념하기 위하여 액면가 오천원 은화와 오백원 백동화 등 2화종(貨種)의 기념주화를 발행하였다. 은화에는 고구려(4세기~6세기)의 벽화인 수렵도를 백동화(白銅貨)에는 현대 사격자세를 도안화하여 고대와 현대의 사격모습의 변천을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1981년 8월 제5공화국 탄생을 경축하기 위한 기념주화를 발행하였다. 발행화종은 액면 이만원 은화와 천원 닉켈화 백원 백동화 등 3화종이며 이만원화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하여 남녀시민, 근로자, 군인, 학생 등 국민각층의 인물상으로 국민의 화합된 의지를 상징하였고 천원화는 서조(瑞鳥)를 뜻하는 봉황을, 백원화는 무궁화를 각각 주소재로 도안하였다.



공통면 (1981.8.14)
이만원 은화
천원 니켈화
백원 백동화

1981년 9월 30일 제84차 바덴바덴 『IOC』 총회에서 1988년 제24회 올림픽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키로 의결함에 따라 올림픽의 서울유치를 거국적으로 경축하고 올림픽 지원자금을 조성하기 위하여 이만원 은화와 만원 은화, 천원 백동화 등 3화종씩의 기념주화를 2차에 걸쳐 발행하였다. 1차의 이만원 은화는 올림픽 경기를 상징하는 성화, 만원화는 서울의 관문이며 국보 제1호인 남대문과 오륜을 상징한 다섯송이의 무궁화, 그리고 천원화(貨)는 전통문화로서 축제를 의미하는 민속무를 도안화하였다. 그리고 2차에는 이만원은화에 우리고유의 민속경기인 씨름을, 만원 은화에는 경회루위에 다섯마리의 비둘기가 평화를 기약하며 힘차게 비상하는 모습을, 천원화에는 민속무인 부채춤을 그려 넣었다.


공통면
제1차발행(1982. 9. 30)

이만원 은화
만원 은화
천원 백동화
제2차발행(1983. 7. 1)
이만원 은화
만원 은화
천원 백동화

1783년 복자 이승훈(福者 李承薰)이 동지사(冬至使) 사절을 따라 중국 북경에 가게되어 약 40일간 머물면서 프랑스의 그라몽(Gramont)신부에게서 교리를 배우고 이듬해인 1784년 2월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3월에 교리책, 십자가, 성화 등과 그밖에 귀중한 자료들을 받아서 서울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복음의 사도로 활약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가 바로 우리나라에 하느님 복음이 시작되는 역사적인 해이다. 그로부터 200년이 되는 1984년 천주교 전래(傳來)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원 은화와 천원 백동화 두화종의 기념주화를 발행하였다. 은화 만원화에는 김대건 신부와 103위 성인 가운데에서 프랑스의 범 로렌죠주교, 동정궁녀 박루시아를 주소재로 하였으며, 천원 백동화에는 사적 제258호인 명동성당이 새겨져 있다.
공통면 (1984. 5.1)
만원 은화
천원 백동화
하계 및 동계 올림픽 못지않은 세계적 스포츠 행사로 월드컵 세계축구선수권대회가 있다. 이대회는 1930년 우루과이에서 첫대회가 열린 이래 1942년과 1946녀의 두차례 대회가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열리지 못한 것을 제외하고는 매 4년 마다 유럽과 남미에서 번갈아 개최되어 왔다.

월드컵대회에서 제일 처음 발행된 기념주화는 1978년 아르헨티나 정부가 제11회 대회를 기념하는 은화 3종, 황동화 3종을 발행하였으며 1982년 제 12회 스페인대회에서는 알미늄, 황동, 백동화 등 6종의 비 귀금속화만을 발행하였다. 1986년 13회대회는 16년만에 다시 멕시코에서 개최되었으며 금화 1종, 은화 3종이 프르프(proof) 화로 발행되었다.


공통면

3000페소 은화
2000페소 은화
1000페소 은화
100페소 동화
50페소 동화
20페소 동화


공통면

100페세타 백동화
50페세타 백동화
25페세타 백동화
5페세타 백동화
1페세타 동화
50센티모 알미늄화


공통면

25페소 은화
100페소 은화
50페소 은화
250페소 금화

출처 : 산본 |글쓴이 : 모란 [원문보기]
출처 : 인생살이 쉼터
글쓴이 : 윤삿갓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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