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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상기획(29)] 성탄제/ 김종길

구름에 달 가듯이 2011. 5. 3. 19:06

 


 

 

성탄제 / 김종길

 

어두운 방안에
바알간 숫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목슴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속을
아버지가 약을가져 오셨다.

 

아,아버지가 눈속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르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것이였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있었다.
그 날밤이 어쩌면
성탄제 밤 이였을지도 모른다.

 

어느 새 나도
아버지 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 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옛날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살,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알알이
아직도 내혈액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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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 감상: 정끝별·시인 ]
  • 김종길(81) 시인의 '성탄제'를 읽는 일은 내게 유년의 흑백 사진을 보는 일처럼 애틋하고 살가운 일이다.
    겨울밤, 열에 시달리며 칭얼대던 어린 내게 아버지의 코트 자락은 서늘했다.
    겉옷을 벗으신 아버지는 물에 만 밥 한 숟갈 위에 찢은 김치를 씻어 올려놓으시고는 아, 아, 하셨다.
    하얀 가루약도 그렇게 먹이셨다.
    어머니가 방을 치우고 이부자리를 펴는 사이 오래오래 나를 업고 계셨다.


  • 산수유 열매는 고열에 약효가 있다.
    열에 시달리는 어린것을 위해 산수유 열매를 찾아 눈 덮인 산을 헤매셨을

  • 아버지의 발걸음은 얼마나 초조했을까.
     할머니가 어머니의 부재를 대신하고 있으니 아버지 속은 얼마나 더 애련했을까.
    흰 눈을 헤치고 따오신 산수유 열매는 혹한을 견디느라 또 얼마나 안으로 말려 있었을까.
    눈 속의 붉은 산수유 열매는, 바알간 숯불과 혈액과 더불어 성탄일의 빨간 포인세티아를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가 찾아 헤매셨던, 탄생과 축복과 생명과 거룩을 염원하는 빛깔이다.
    생을 치유할 수 있는 약(藥)의 이미지다.


  • 김종길 시인은 명망있는 유학자 집안의 후예다.
    한학과 한시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가 선택한 것은 영문학이었다.
    우리나라에 영미시와 시론, 특히 이미지즘을 소개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했다.
    유가적 전통과 이미지즘이 어우러진 그의 시는 명징한 이미지, 절제된 표현,
    선명한 주제 의식을 그 특징으로 삼고 있다. 이를 일컬어 '점잖음의 미학'이라 했던가.


  • 차가운 산수유 열매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이 어린것의 열을 내리게 했을 것이다.
    특히 산수유, 서느런, 성탄제, 숯불, 설어운 설흔 살의 'ㅅ' 음이 서늘한 청량제 역할을 한다.
    그 서늘한 청량제 속 따스한 혈맥이 우리네 가족애일 것이다.
    그 따스함은,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그의 시 '설날 아침에'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마음으로 설날 아침을 맞이하자.
    매운 추위 속에서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맞이하자.
    그 한가운데 가족이 있음을 기억하자

 

 
출처 : 구름에 달 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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