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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Purple ... 1

구름에 달 가듯이 2011. 5. 25. 15:41


 



이름 : 딥 퍼플
영문명 : DEEP PURPLE
장르 : Hard Rock
성별 : 그룹
생일 / 데뷰 : 1968-01-01
활동연대 : 1960, 1970, 1980, 1990, 2000
소속사 :

 

* 멤버: 이언 길런(Ian Gillan, 보컬), 리치 블랙모어(Richie Blackmore, 기타), 로저 글로버(Roger Glover, 베이스), 존 로드(Jon Lord, 키보드), 이언 페이스(Ian Paice, 드럼), 토미 볼린(Tommy Bolin, 기타), 조 새트리아니(Joe Satriani, 기타), 글렌 휴즈(Glenn Hughes, 베이스), 데이비드 커버데일(David Coverdale, 보컬), 로드 에반스(Rod Evans, 보컬), 닉 심퍼(Nick Simper, 베이스), 조 린 터너(Joe Lynn Turner, 보컬), 스티브 모스(Steve Morse, 기타)

 

1970년대 록 신에서는 하드록 혹은 헤비메탈의 급격한 성장세가 도드라졌다. 1960년대 말부터 스포트라이트 받았던 하드 록 사운드가 젊은 피의 대변자임을 자청, 록의 주요 장르로 우뚝 섰던 것. 바로 수많은 밴드들이 자웅을 겨뤘던 록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한 개막이었다.

 

그 중에서도 딥 퍼플은 소리의 볼륨에 있어서 단연 넘버원이었다. 1968년 영국 허트포드(Hertford)에서 결성된 이 하드 록 제왕은 한때 기네스북 공인의 세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그룹임을 뽐낼 만큼 열혈 헤드뱅어들을 휘하로 집결했다. 비록 월드 마케팅에서는 레드 제플린에 비해 뒤졌지만 적어도 국내와 일본에서만큼은 그들이 인기 순위 1위였다.

일례로 밴드의 시그니처 송이자 딥 퍼플이 오프닝을 섰던 스위스 몬트뢰 빌딩에서의 프랭크 자파 공연 당시의 화재를 보며 작곡한 Smoke on the Water는 록을 알기 위한 통과의례로 변함없이 극빈 대접을 받고 있다.

 또한 딥 퍼플은 기수로 구분될 만큼 잦은 멤버 교체로 유명했는데, 명 기타리스트이자 리더 격이었던 리치 블랙모어의 독선이 주된 원인이었다.

 

최초 그룹은 존 로드, 닉 심퍼, 리치 블랙모어, 로드 에반스, 이언 페이스의 라인업으로 출항의 닻을 올렸다. 허나 처녀작 「Shades of Deep Purple」(1968), 소포모어 음반 「Deep Purple」(1969), 3집 「The Book of Taliesyn」(1969) 등의 작품들에서 드러나듯 그들만의 캐릭터가 명확히 잡히지 않은 시기였다.

수록곡 대부분이 조 사우스(Joe South)의 Hush(빌보드 싱글 차트 4위)와 Hey Joe, 닐 다이아몬드(Neil Diamond)의 Kentucky Woman(38위), 비틀즈의 Exposition/We Can Make It Out, 팝 클래식 River Deep-Mountain High(53위) 등, 리메이크로 채워져 있다는 데서 잘 파악된다. April과 Anthem 등, 존 로드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클래시컬한 넘버들 역시 별다른 피드백 효과를 얻지 못했다.

 

같은 해 로드 에반스와 닉 심퍼가 팀을 등지고 이언 길런과 로저 글로버가 새로이 투입되면서 딥 퍼플의 황금 시대가 비로소 개막되었다. 권력의 축이 존 로드에서 리치 블랙모어에게로 옮겨간 것 또한 이 즈음이었다.

리치 블랙모어의 진두지휘 아래 그룹은 막강한 하드 록 사운드를 내뿜기 시작했다.

 존 로드 작곡의 Concerto Group and Orchestra를 기초로 완성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작 「Concerto Group and Orchestra」(1969) 이후에 발표한 일련의 앨범들이 이를 잘 대변한다.

Child in Time, Speed K0ing 등이 사랑 받았던 1970년의 「Deep Purple in Rock」, Strange Kind of Woman, Black Night(66위) 등이 히트했던 빌보드 앨범 차트 32위의 「Fireball」(1971), 불멸의 명곡 Smoke on the Water(4위)와 Highway Star를 담고있는 1972년의 마스터피스 「Machine Head」(7위) 등이 그것들이다. 실황 작품인 [Made In Japan](6위, 1972)은 각종 라이브 명반 선정에 빠지지 않고 등재될 만큼 동종(同種) 품목 중 발군임을 뽐냈다.

허나 1973년의 「Who Do You Think We Are」를 끝으로 이언 길런과 로저 글로버가 탈퇴하면서 2기는 막을 고했다.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를 맞이하며 시작점을 찍은 3기 역시 찬란한 성과를 이어나갔다. 숨겨진 보석 Burn이 수록된 동명 타이틀의 「Burn」(9위, 1974), 같은 해의 「Stormbringer」(20위)등이 히트 퍼레이드를 펼쳤던 것. 곡들 중, 후자에 실린 Soldier of Fortune은 국내에서 선풍적 인기몰이를 한 바 있다.

여러 발라드 선곡집에 현재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골든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곧 이어 리치 블랙모어가 레인보우(Rainbow)를 결성, 밴드를 떠남으로써 딥 퍼플은 좌초의 위기에 몰렸다.

 

천재 기타리스트 토미 볼린(Tommy Bolin, 1976년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이 그 공백을 훌륭히 메워주었다. 그의 음악적 취향이 적극 반영된 재즈풍의 음반 「Come Taste The Band」가 이 시기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이는 기존의 헤비 메탈 지향성과 삐걱 화음을 자아내면서 딥 퍼플은 1976년 영국 투어를 끝마친 후 휴지기에 들어갔다.

 

밴드가 끊임없는 재결합설에 부응하며 다시 한번 기지개를 편 때는 1984년. 리치 블랙모어, 존 로드, 이언 길런, 로저 글로버, 이언 페이스의 드림 팀으로 구성된 그들은 「Perfect Stranger」(1984), 「The House of Blue Light」(1987) 등을 내놓으며 여전한 저력을 과시했다.

 

이언 길런과 리치 블랙모어의 갈등으로 이언 길런 대신 조 린 터너를 보컬로 기용했던 「Slaves and Masters」(1990)를 기점으로 그룹의 인기 곡선은 완연한 하향세를 그렸다. 이언 길런을 재 수혈해 녹음했던 「The Battle Rages on」(1992)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를 견디지 못한 리치 블랙모어가 또 다시 굿바이를 선언, 밴드는 결국 타이타닉 호의 운명을 걷는 듯 보였다.

 

그러나 컨트리 록 기타의 달인 스티브 모스를 후임으로 낙점하면서 그룹은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해나갔다.

 

 통산 16집인 1996년작 「Purpendicular」, 17집인 「Abandon」 등으로 호평 받았던 딥 퍼플은 국내에서 가졌던 몇 차례의 공연을 포함, 지금도 여러 곳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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