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방 ■/■ POP ... artist

Neil Young

구름에 달 가듯이 2011. 11. 1. 11:37

닐 영은 1945년 11월 12일 캐나다의 온타리오주 토론토에서

태어났다. 이후 그는 마니토바의 위니팩에서 자라면서 그곳에서 고교를 마쳤다. 고교 시절 그는 Neil Young & The Squires라는

밴드를 조직해 활동했고 졸업 후에는 포크음악을 연주하며

클럽 등지의 유명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이어서 그는

스티브 스틸스 등과 함께 크로스비 스틸스 내쉬 앤 영 등의

밴드를 조직해 60년대 말엽을 화려하게 수놓았고 크레이지

호스라는 밴드를 조직해 역시 멋진 포크록 사운드를 펼쳤다.

밴드 활동 이후 그는 솔로로 전향해 여러 장의 수작을 공개하며 음악계 전역에 영향을 미치는 거물로 자리했다.

닐 영은 소닉 유스의 팬이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소닉 유스야말로 새롭고 신선한 록큰롤을

연주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pressway To Your Skull'은 특히 그가 아끼는 곡이다.

한편 닐 영은 만일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가장 만나고 싶은 인물로 리드벨리, 로버트 존슨,

하운드 독 테일러, 쇼팽, 베토벤 등을 꼽고 있다.

마틴 D-18 기타를 좋아하는 그는 이 기타로 많은 곡들을 작곡했다. 그러나 매니저인 엘리엇의 사무실에서 이 기타를 도둑맞고 말았다. 닐 영은 사이키델릭과 노이즈 기타, 핑거피킹, 뮤팅,

벤딩, 그외 각종 파워코드를 이용한 리듬기타 등에서 발군의 솜씨를 보였다. 포크 전문

기타리스트가 드물었던 시절에 그는 빼어난 기타솜씨로 명연을 펼쳐 보컬 및 기타리스트로

주목을 받았고 그의 기타는 현재까지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용장비
◇Gibson Les Paul Firebird(53년) with Bigsby pickups,

Epiphone, Gretch, Fender Broadcaster, Fender Telecaster, Martin D-18, Martin D-28
◇Fender Twin Reverb Amps, Fender Deluxe Amp(59년)
◇MXR Analog Delay, Mutron Octave Divider, Tube Echoplex, BOSS Flanger,


한때 뉴 포크(folk) -컨트리 -록 밴드의 대표주자이자 웨스트코스트 밴드의 원조로 각광받았던 버팔로 스프링필드(Buffalo Springfield)의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 출신인 닐 영(Neil Young)은 싱어송라이터로서 다양한 영역의 음악들을 섭렵해내는, 한마디로 음악의 영역에서 자유를 맘껏 누리고 있는 히피(hippie) 뮤지션이다.
솔로 어쿠스틱 발라드, 감미로운 컨트리 록, 정제되지 않은 하드 록까지 세 가지 기본 스타일에 그의 고음역의 목소리를 더해 70년대 초 이미 독자적인 영역을 굳힌 닐 영은 작사에 있어서도 개인적인 고백에서 사회 풍자적이고 암시적인 스토리까지 그만의 음악적 특질들을 보여주었다.

에스콰이어(Esquires), 스타더스터(Stardusters), 스콰이어(Squire) 등의 고등학교 록 밴드에서 활동했던 닐 영은 66년 베이시스트 브루스 파머(Bruce Palmer), 스테픈 스틸스(Stephen Stills, 기타), 리치 퓨레이(Richie Furay)와 버팔로 스프링필드를 결성해 활동하며 곧 인기 정상에 오르게 된다. 68년 밴드가 해체된 이후 솔로 활동을 하게 된 그는 69년 데뷔 앨범을 발매하였다.

그룹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의 연주가 뒷받침된 'Cinnamon Girl', 'Down by the River', 'Cowgirl in the Sand' 등의 히트곡을 양산, 플래티넘을 기록한 두 번째 앨범 [Everybody Knows This Is Nowhere](69)로 인기몰이를 시작한다. 이후 크로스비, 스틸스 앤드 내쉬(Crosby, Stills and Nash)에 가담하여 CSN&Y라는 이름으로 [Deja Vu]라는 앨범을 공동작업하기도 한 그는 70년 솔로앨범 [After the Gold Rush]의 'onl     y Love Can Break Your Heart'로 히트를 기록하고, 이어서 앨범차트 넘버원을 차지한 [Harvest](72)와 넘버원 싱글 'Heart of Gold'로 명실공히 수퍼스타 대열에 들어서게 된다.

사실주의 영화 [Journey Through the Past]의 사운드 트랙으로 비평가들 사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이어 대충 작업한 듯한 라이브 실황앨범 [Times Fade Away](73)로 팬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 닐 영은 약물과용으로 두 친구를 잃은 감정적인 혼란의 상태를 담은 [Tonight's the Night](75), 강렬한 하드 록 사운드의 [Zuma](75)를 발표한다.

70년대 말까지 [Long May You Run](76), [American Stars'n Bars](77), [Comes a Time](78) 등 골드 앨범들을 양산한 그는 80년대에 들어서도 어쿠스틱 음악과 컨트리 송이 혼재된 [Hawks and Doves](80), 하드록 앨범 [Reactor](81), 컴퓨터 처리된 보커더로 독특한 사운드를 연출한 [Trans](82) 등으로 변함없는 인기를 누렸다. 또한 로커빌리(rockabilly, 1950년대 말에 유행한 음악 스타일로 컨트리 악기로 록음악을 연주하는 것) 스타일의 앨범 [Everybody's Rockin'], 컨트리 음악 [Old Ways], 뉴웨이브 신디사이저가 특색을 이룬 [Landing on Water], 혼 섹션이 기반이 된 R&B 앨범 [This Note's for You] 등 상업적인 성공과는 관계없이 난해하고 수수께끼 같은 음악적 시도가 계속되었다.

음악 활동 이외에도 닐 영은 85년 아프리카 기아를 돕는 라이브 에이드(Live Aid)에 참여한 이후 팜 에이드(Farm Aid)를 창설했고, 86년에는 언어 장애 아동을 돕는 브리지 스쿨(Bridge School)을 세운 뒤 학교 기금마련을 위해 매년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포스트 펑크 바람에 편승해 [Freedom](89), [Ragged Glory](90) 같은 일련의 하드록 앨범으로 젊은 얼터너티브 록 밴드에게도 영향을 끼친 닐 영은 94년 영화 [Philadelphia]의 사운드 트랙으로 오스카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이어 강하고 매혹적인 록 앨범 [Sleeps With Angels](94), [Mirror Ball](95)을 발표해 록 마니아인 젊은 층으로부터도 인정을 받게 되었으며, 뒤이은 96년의 [Dead Man], [Broken Arrow], 97년 [Year of the Horse]라는 라이브 앨범까지 음악적 열정과 창의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NEIL YOUNG 위니팩의 고독한 이리

어느날 영상으로 접한 그의 공연에서 닐 영의 눈빛을 자세히 들여다 본 적이 있었다. 그래봐야 25인치 짜리 화면에 잡힌 허상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길들여진 인간이라기 보다는 야성의 이리를 닮아 있었다. 그러고 보면, 영화 배우 잭 니콜슨의 눈빛과도 많이 닮은듯 하다.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태어나 위니팩에서 성장한 대표적인 캐나디안 뮤지션이지만, 닐 영의 주 무대는 미국이다. 버팔로 스프링필드에서 보여준 불세출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우드스탁에서 크로스비, 스틸스, 내쉬 & 영과 함께 했던 무대도 충분히 주목받을 만 했지만, 그는 자신의 별명처럼 집단 속의 개인이 되기에는 너무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의 솔로 첫 음반인 [Every Knows This Is Nowhere]가 싸이키델릭 포크 성향의 음반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의 평론가들이 쟝르 분류에 있어 난감함을 표했던 것처럼 그의 음악은 그 시대의 유행을 따르면서도 시대와 묘한 불협화음을 만들어 냈다.

그가 가사를 통해 그려내는 사상의 세계도 좀처럼 갈피를 잡기가 힘들다. 때로는 시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듯 하면서도 실상은 파괴적이고, 현실도피적인 내용도 있지만 극단적으로 정치 참여적이고, 잡다한 일상 속의 유유자적함을 표현하다가도 고독과 절망에 몸부림치기도 하고. 그의 기타도 단순한 듯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파괴력을 숨기고 있다. 그래서 인지 그는 동 시대의 대중들 보다는 몇 세대를 건너 뛴 그런지 세대에 와서 대중이 아닌 밴드들에게 재평가를 받았다.

물론, 그 시대의 대중들과 연주자들이 그를 평가절하했던 건 아니다. 그는 60년대 이후 모든 시대를 아울러 연주자가 인정하는 존경받는 뮤지션이었으니까. 단지, 그런지 세대들이 가장 먼저 우상으로 소환한 것이 닐 영이었다는 거다.

그를 대중적으로 평가하게 한 것이 <Heart Of Gold>나 <Four Strong Winds>같은 평이한 구성의 포크 발라드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의 진면목은 전혀 다른 곳에서 발견이 된다. 목가적이고 전원적이기 보다는 험준한 바위산에 어울림직한 그의 목소리.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간혹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낀다.

좌중을 압도하는 포효하는 음색도 아니면서, 감상자를 낯설고 스산한 분위기 속으로 몰아 넣는 목소리의 정체는 이리의 나즈막한 울음과 닮아 있다. 크게 소리지르지도 않으면서 먼 곳까지 울려 퍼지는 깊은 울음. 닐 영은 희랍인 조르바와는 다른 면에서 야성을 표현한다.

그가 90년대에 그런지 사운드를 선보인 것이 처음에는 의외로 느껴졌고, 나이 먹어서 주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것은 궁극적으로 그의 음악의 본질을 잘 못 이해하고 있었던 산지기의 편견에 불과했다. 그의 70년대 음악들을 디스토션 걸린 강한 비트의 음악으로 탈바꿈 시키면 그게 결국 그런지가 된다. 이런 점이 필드에서 뛰는 연주자들과 의자에 앉아서 편안히 듣고 평가하기나 좋아하는 자칭 감상자의 차이점이 아닐까?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그가 왜 MTV Unplugged무대에 섰나 하는 부분이다. 언플러그드라면 그가 60년대와 70년대 내내 동안 무대에서 보여줬는데, 또 무엇이 보여줄게 남았더란 말인가. 물론 에릭 클랩턴의 언플러그드 무대도 솔로 시절 이후 일렉트릭 기타에 못지 않게 어쿠스틱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그가 재차 평가를 받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닐 영의 무대에 대한 의문점은 오래도록 해답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 해답을 구하기에는 좀 더 많은 시간의 투자가 필요할 듯 하다.

비구름이 하늘에 덮이면 닐 영의 <See The Sky, About To Rain>의 유유자적함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다가 이내 비가 쏟아지면 이 구슬픈 노래를 꼭 듣게 된다. 그만의 무대를 처음 열었었던 음반 [Every Knows This Is Nowhere]의 수록곡으로 <Down By The River>와 <Cinamon Girl>의 명성에 가려 빛을 보지 못 했던 이 노래 <Running Dry>.

한국인들의 취향은 역시 특이하다. 주류 시장에서 대접받지 못한 이 구슬픈 노래를 애청곡의 계보에 올려놓았으니 말이다.

'■ 음악방 ■ > ■ POP ... artis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설의 기타 리스트 3  (0) 2011.11.01
Chris Spheeris  (0) 2011.11.01
Al Stewart - The palace of Versailles  (0) 2011.11.01
Bob Dylan - Lilly of the Wes  (0) 2011.11.01
Bette Midler - The Rose   (0) 2011.11.01